한국사 연도별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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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연도별 정리 삼국시대

한국사 연도별 정리 삼국시대

한국사 연도별 정리 신라

2대 남해 차차웅 (4 ~ 24)

남해 차차웅은 초기 신라의 기틀을 마련한 인물로, 제사장의 역할을 하면서도 정치와 종교의 엄격한 분리를 구현했습니다. 이는 통치 체제의 독립성을 강조하는 중요한 전통의 시작이었으며, 초기 국가 형성 과정에서의 중대한 사회 구조와 지배 체계의 확립에 기여했습니다.

 

17대 내물 마립간 (356 ~ 402)

내물 마립간은 신라의 정치 체계에서 중요한 변화를 이끌었습니다. 그는 세습적 군주제를 확립하고, 마립간 체제로 전환했습니다. 이로 인해 왕권이 강화되었고, 통치 구조가 더욱 체계화되었습니다. 내물 마립간은 또한 낙동강 유역의 진한을 장악하며 영토를 확장했고, 이 지역의 통합을 통해 중앙 집권적 국가 구조를 강화했습니다. 중국의 전진과 수교를 통해 국제적 위치를 강화했으며, 이는 신라의 국제적 위상 제고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특히, 400년에는 왜구의 침입을 광개토대왕의 도움으로 성공적으로 격퇴하며 신라의 국방력을 과시했습니다.

 

19대 눌지 마립간 (417 ~ 458)

눌지 마립간은 백제와의 나제 동맹을 결성하는 등의 외교 정책으로 지역 균형을 추구했습니다. 이 동맹은 433년에 이루어졌으며, 이는 두 나라 간의 군사적, 경제적 협력을 강화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457년에는 고구려로부터 불교가 전래되었는데, 이는 신라 사회에 깊은 문화적, 종교적 영향을 미쳤습니다. 불교의 수용은 신라의 사회 구조와 정치에 장기적인 변화를 가져왔으며, 이후 신라의 불교 문화 발전에 큰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20대 자비 마립간 (458 ~ 479)

자비 마립간의 통치 기간 동안 주요한 도시 정비와 행정 개편이 이루어졌습니다. 특히, 방리 명칭을 제정하여 지방 행정을 체계화하고, 도시 계획을 개선하여 국가의 행정 효율성을 높였습니다. 또한 고구려의 장수왕이 자비마립간을 충주에서 소환 (475년)하여 두 나라 간의 긴밀한 외교 관계를 유지하는 중요한 외교적 조치를 취했습니다.

 

21대 소지 마립간 (479 ~ 500)

소지 마립간은 내부 행정과 경제 구조를 크게 개혁하였습니다. 487년에 우역을 설치하고, 시장을 개설하여 경제 활동의 중심지를 조성했습니다. 또한, 전통적인 6촌 체계를 6부로 재편하여 행정 구조를 현대화하고 중앙 집권을 강화했습니다. 493년에는 백제와 혼인 동맹을 체결하여, 국가 간의 안정적인 관계를 구축하고 정치적 연대를 강화하였습니다. 이러한 정책들은 신라의 국내 안정과 경제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22대 지증 마립간 (501 ~ 514)

지증 마립간은 신라의 국호를 사로국에서 신라로 변경하면서, 국가 정체성 강화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그는 포항 중성리와 영일 냉수리에 신라비를 세우는 등의 행정 조치를 통해 신라의 지배 영역을 명확히 표시했습니다 (501년, 503년). 또한, 이사부를 이끌고 우산국을 합병하는 등의 영토 확장 정책을 추진하였으며 (512년), 지역 행정과 군사 조직을 정비하여 신라의 중앙 집권적 통치 체계를 강화하였습니다.

 

23대 법흥왕 (514 ~ 540)

법흥왕의 통치는 신라의 중앙 정부 구조와 군사 조직의 체계화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516년에 병부를 설치하여 군사 조직을 개편하고, 520년에 율령을 반포하여 법제를 체계화했습니다. 법흥왕은 불교를 신라의 국교로 공인하였으며 (527년), 이차돈의 순교를 계기로 불교에 대한 사회적 지지를 확보했습니다. 그는 또한 금관가야를 복속시키는 등의 영토 확장을 통해 신라의 지배력을 강화했습니다 (532년).

 

24대 진흥왕 (540 ~ 576)

진흥왕은 신라의 황금기를 이끌었으며, 다양한 사원을 건립하고 화랑도를 개편하여 청소년 교육 및 국가의 군사력 강화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나제동맹이 결렬된 후 (553년), 그는 관산성과 옥천에서의 전투 등을 통해 신라의 군사적 입지를 강화하였습니다 (554년). 또한, 비화가야, 대가야 등을 정복하고, 다수의 비석을 세워 신라의 영토 확장을 기록했습니다 (562년).

 

26대 진평왕 (579 ~ 632)

진평왕의 통치는 내부 안정과 경제 발전에 큰 중점을 두었습니다. 그는 세속오계(608년)를 통해 사회 윤리를 강조하고, 다양한 부를 설치하여 행정 체계를 강화했습니다. 이는 신라 사회의 정치적, 경제적 기반을 단단히 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진평왕은 또한 외교 정책에서도 활발히 활동하여, 특히 남한산 신성비를 통해 신라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외국과의 교류를 증진시켰습니다.

 

27대 선덕여왕 (632 ~ 647)

선덕여왕은 신라의 첫 여성 군주로서, 그녀의 통치 기간 동안 중요한 문화적, 건축적 업적을 남겼습니다. 첨성대(634년)와 황룡사 9층 목탑을 건립하여 신라의 천문학과 불교가 융성하는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분황사 모전석탑과 같은 불교적 유산들도 이 시기에 조성되었습니다. 외적으로는 의자왕의 공격을 받아 대야성이 함락되는 어려움을 겪었습니다(642년), 그러나 그녀는 정치적 위기 관리에 능했으며, 강릉 등지에 북 소경을 설치하여 영토를 확장했습니다.

 

28대 진덕여왕 (647 ~ 654)

진덕여왕은 중국과의 관계를 강화하며 국제적 위상을 높였습니다. 그녀는 중국식 의관 착용을 도입(649년)하고 중국 연호 사용을 시작했습니다(650년). 이는 당시 중국과의 깊은 문화적, 정치적 연결을 상징합니다. 또한 국내에서는 집사부, 창부, 좌이방부 등을 설치하여(651년) 행정 체계를 개선하고 국가 운영의 효율성을 증진시켰습니다.

 

29대 무열왕 (654 ~ 661)

무열왕은 백제와의 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두어 백제를 멸망시켰습니다(660년). 이는 삼국 통일의 큰 발판을 마련한 결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그의 군사적, 정치적 리더십은 신라가 한반도 남부에서 지배력을 확고히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30대 문무왕 (661 ~ 681)

문무왕은 고구려 멸망 후 한반도의 대부분을 통일하여 신라의 삼국 통일을 완성했습니다. 그의 통치 기간 동안 매소성 전투(675년)와 기벌포 전투(676년) 등 여러 군사적 승리를 통해 신라의 군사력을 과시했습니다.  

한국사 연도별 정리 백제

8대 고이왕 (234 ~ 286)

고이왕은 형식적인 형제 세습 체제를 이어가며 한강 유역을 포함한 중요한 지역을 장악했습니다. 특히 목지국을 병합하고 낙랑, 대방, 말갈을 축출하여 영토를 확장했습니다. 그는 262년에 율령을 반포하고, 6좌평 16관등제와 관복제(자색, 비색, 청색)를 도입하여 관료 체계를 정비했습니다. 또한, 귀족 합의체인 남당을 설치하여 귀족들의 의견을 정치에 반영하는 체계를 마련했습니다.

 

13대 근초고왕 (346 ~ 375)

근초고왕은 부자 세습을 유지하며 백제의 황금기를 이끌었습니다. 그는 동진과의 교류를 통해 문화와 기술을 도입했고, 일본으로 아직기와 왕인을 파견하여 한자와 유교 경전을 전파했습니다. 371년에는 고구려와의 대결에서 평양성을 점령하는 등 영토를 확장했으며, 서쪽으로는 중국 요서와 산둥 지역, 남쪽으로는 마한을 합병하여 남해안과 일본의 규슈 지방에 진출했습니다.

 

15대 침류왕 (384 ~ 385)

침류왕은 짧은 통치 기간 동안에도 불교를 수용하여 백제에 불교가 정착하는 기초를 마련했습니다. 384년, 인도 승려 마라난타가 동진을 통해 백제에 도착하면서 불교를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후에 백제 문화와 종교에 깊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21대 개로왕 부여경 (455 ~ 475)

개로왕은 북위와의 외교적 교류를 시도했지만, 472년에 거절당하고 이후 고구려의 침입을 받아 한강 유역을 상실하고 전사했습니다(475년). 이 사건은 백제의 정치적, 군사적 약화를 초래했습니다.

 

22대 문주왕 (475 ~ 477)

문주왕은 고구려에 의한 수도 위협에 대응하여 웅진(공주)으로 천도했습니다(475년). 그러나 그의 통치는 매우 짧았고, 결국 고구려의 침입으로 인해 피살되었습니다.

 

24대 동성왕 (479 ~ 501)

동성왕은 신라와 혼인 동맹을 체결(493년)하고 탐라국을 복속시키는 등(498년) 외교와 군사에서 활발한 활동을 보였습니다. 이러한 조치는 백제의 국제적 위상을 강화하고 지역 안정을 추구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25대 무령왕 (501 ~ 523)

무령왕은 백제의 정치, 경제, 문화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지방 행정 조직인 22담로를 설치하고 남조와의 수교를 통해 중요한 무역 관계를 구축했습니다.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유물들은 당시 백제의 높은 문화 수준과 국제적 교류를 증명합니다. 또한, 일본으로 유교 경전을 전파하고 불교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등 문화적 영향력도 높였습니다.

 

26대 성왕, 전륜성왕 (523 ~ 554)

성왕은 백제의 국제적 위상을 더욱 강화하고 국내 행정 시스템을 개선했습니다. 그는 529년 인도에서 계율종(소승불교)의 불경을 가져오는 등 불교 문화의 융성을 촉진했습니다. 538년에는 사비로 천도하고 국호를 남부여로 변경, 중앙관청을 22부 체제로 확장하고 수도 행정을 5부로 세분화하여 국가 운영의 효율성을 강화했습니다. 551년 신라와 공동으로 한강 하류를 회복하는 등 외교와 군사적 성과도 이루었고, 일본으로 불교를 전파하여 문화적 영향력을 확대했습니다. 그러나 553년 나제동맹의 결렬과 554년 관산성에서의 전사는 그의 통치 말기에 큰 위기를 초래했습니다.

 

27대 위덕왕 (554 ~ 598)

위덕왕은 국내외적으로 문화 교류와 불교 전파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일본 쇼토쿠 태자의 스승으로서 아좌태자와 혜총이 일본에 초상화 기술과 불교를 전수했습니다. 또한 창왕명 석조사리감(능산리사지)을 건립하고 왕흥사에 심초석을 설치하는 등 불교 문화재 건립에 큰 공헌을 했습니다. 그의 통치 기간 동안 백제는 문화적으로 번성했으나, 외부 위협에 취약한 구조적 문제도 드러났습니다.

 

30대 무왕 (600 ~ 641)

무왕은 백제의 통치 기간 동안 익산으로 천도를 시도했으며(왕궁리 유적), 미륵사와 왕흥사 건립 등 큰 규모의 건축 프로젝트를 진행하여 백제 불교의 중심지로 만들었습니다. 그는 일본에 역서, 달력, 천문, 지리서 등을 전파하여 백제와 일본 간의 문화적, 학술적 교류를 촉진했습니다.

 

31대 의자왕 (641 ~ 660)

의자왕의 시대는 백제의 마지막 황금기이자 도전의 시기였습니다. 그는 신라와의 전쟁에서 초기에는 성공적으로 여러 성을 점령했으며 대야성을 함략했습니다(642년). 그러나 660년에 신라와 당나라의 연합군에 패하여 백제는 멸망하고, 의자왕은 포로로 잡혔습니다. 이는 백제의 700년 역사를 마감하는 비극적인 순간이었습니다.

 

한국사 연도별 정리 고구려

1대 동명성왕, 고주몽 (BC 37 ~ BC 19)

동명성왕은 고구려를 졸본(오녀산성)에서 건국한 창건자입니다. 그는 북방의 여러 소국들을 통합하고, 고구려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2대 유리명왕, 고유리 (BC 19 ~ AD 18)

유리명왕은 고주몽의 아들로, 국내성(환도성)으로 수도를 천도했습니다. 그는 황조가를 비롯한 여러 제도를 도입하여 국가의 기반을 공고히 했습니다.

 

6대 태조왕, 고궁 (53 ~ 146)

태조왕은 형제 세습을 정착시키고, 옥저와 동예를 복속시켜 고구려의 영토를 확장했습니다. 그는 118년 현도군을 공격하여 고구려의 국력을 크게 증진시켰습니다.

 

9대 고국천왕, 고남무 (179 ~ 197)

고국천왕은 부자 세습을 유지하면서 행정 체계를 5부로 개편했습니다. 그는 진대법을 도입하여 국가 경제를 강화하고, 국상 을파소를 중용하여 정치를 안정화했습니다.

 

11대 동천왕, 고우위거 (227 ~ 248)

동천왕은 서안평을 공격하여 고구려의 영토를 확장했으나 (242년), 이후 위나라의 역습으로 국내성과 환도성이 잠시 함락되었습니다. 그는 오나라와 수교를 통해 위나라의 견제를 모색했고, 형사 취수제를 소멸시키는 등 사회 제도를 개선했습니다.

 

12대 중천왕, 고연불 (248 ~ 270)

중천왕은 장발부인(관나부인)을 중심으로 한 문화적인 교류를 활성화했습니다.

 

15대 미천왕, 고을불 (300 ~ 331)

미천왕은 서안평 점령(311년), 낙랑과 대방군 축출(313년, 314년)을 통해 고구려의 영토를 크게 확장했습니다.

 

16대 고국원왕, 고사유 (331 ~ 371)

고국원왕은 선비족의 침입과 근초고왕의 침입(371년)에 맞서 싸우며 고구려의 위기를 관리했습니다. 특히 342년의 수도 함락과 같은 큰 위기에도 불구하고 고구려의 독립을 지켜냈습니다.

 

17대 소수림왕, 고구부 (371 ~ 384)

소수림왕은 372년 불교를 수용하여 고구려에 불교를 공식 도입했습니다. 또한 같은 해 태학을 설립하고 율령을 반포(373년)하여 고구려의 법제와 교육 체계를 정비했습니다.

 

19대 광개토대왕, 고담덕 (391 ~ 412)

광개토대왕은 고구려의 영토 확장과 국제적 위상 강화에 크게 기여한 왕입니다. 그는 396년에 백제를 공격하여 한강 이북 지역으로 진출했고, 400년에는 왜를 격파했습니다. 그는 또한 395년에 숙신을 정벌하고, 398년에는 비려를 정벌했습니다. 405년 후연을 격파하고, 410년에는 동부여와 북부여를 복속시켜 고구려의 영토를 크게 확장했습니다.

 

20대 장수왕, 고거련 (412 ~ 491)

장수왕은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이어받아 고구려의 강력한 군사력과 국제적 영향력을 유지했습니다. 그는 414년에 광개토대왕릉비를 건립하고, 427년에 평양으로 천도했습니다. 장수왕은 경당을 설치하여 사립 교육 기관을 통해 평민에게도 교육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그는 또한 475년에 남한강 지역을 차지하고, 479년에 흥안령 일대의 초원을 장악하며 고구려의 영토를 넓혔습니다.

 

23대 안원왕, 고보연 (531 ~ 545)

안원왕의 시기에는 북조의 영향을 받은 불교 예술이 고구려에서 발전했습니다. 7년명 금동 여래 입상이 이 시기의 대표적인 예술 작품입니다. 안원왕은 고구려의 문화와 종교적 독창성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북조와의 교류를 통해 문화적 다양성을 추구했습니다.

 

24대 양원왕, 고평성 (545 ~ 559)

양원왕은 신라에 의해 한강 유역을 빼앗기는 등의 외부 압력을 경험했습니다. 그는 귀족연합정치를 실시하며 대대로 선출되는 체제를 강화했지만, 지배층 내부의 분쟁이 이 시기의 정치적 안정성을 해쳤습니다.

 

25대 평원왕, 고양성 (559 ~ 590)

평원왕의 시기는 비교적 적은 외부 전쟁과 내부의 안정을 이룬 시기였습니다. 그는 고구려의 문화와 경제 발전에 주력했습니다.

 

26대 영양왕, 고원 (590 ~ 618)

영양왕은 온달을 포함한 군사적 인물들을 활용하여 고구려의 군사력을 강화했습니다. 590년에 온달은 죽령을 수복하기 위해 출전했으나 전사했습니다. 가장 주목할 만한 업적은 612년 을지문덕이 이끄는 살수대첩으로, 이는 수 양제의 침략을 성공적으로 격퇴한 전투였습니다.

 

27대 영류왕, 고성 (618 ~ 642)

영류왕은 624년에 당나라로부터 도교를 유입시켰고, 631년부터 647년까지 천리장성을 건설하여 고구려의 북방 경계를 강화했습니다. 그러나 642년 연개소문의 정변으로 그의 권력은 크게 약화되었습니다.

 

28대 보장왕, 고장 (642 ~ 668)

보장왕의 시대는 고구려의 마지막 황금기였습니다. 그는 645년 당 태종의 침입을 겪었으며, 안시성 전투에서 양만춘과 연개소문의 도움으로 당의 공격을 막아냈습니다. 그러나 665년 연개소문의 사망과 이어진 내부 분열은 결국 668년 고구려의 멸망으로 이어졌습니다.

한국사 연도별 정리 남북극시대

한국사 연도별 정리 남북극시대

한국사 연도별 정리 통일신라

무열왕 (654 ~ 661)

무열왕은 중국식 시호 사용을 도입하고, 갈문왕제도를 폐지하는 등의 중앙 집권화 조치를 강화했습니다. 그는 시중을 강화하고 사정부를 설치(659년)하여 국가의 행정 기능을 향상시켰습니다. 무열왕은 황산벌 전투(660년)에서 백제를 멸망시켰으며, 이후 북진 설치 등으로 국가의 군사적 기반을 강화했습니다.

 

문무왕 (661 ~ 681)

문무왕은 계림 도독부를 경주에 설치하고 백강전투(663년)에서 백제 복위군과 일본군을 격파했습니다. 공주 취리산에서 회맹(665년)을 체결하고 우이방부를 설치(667년)하여 중앙 집권을 강화했습니다. 그는 670년 압록강에서 선제공격을 시작하여 나·당 전쟁을 주도했으며, 소부리주(사비)를 설치하고 웅진 도독부를 요동으로 이동시켰습니다(672년). 문무왕은 또한 당기병 중심의 5주서를 조직하고, 사정부의 지방 감찰 기능을 강화했습니다.

 

신문왕 (681 ~ 692)

신문왕은 김흠돌의 반란을 진압하고 귀족을 숙청하는 등 내부 안정을 추구했습니다. 그는 국학을 설립(682년)하고 공작부, 예작부를 설치하여 중앙 정치 기구와 군사 제도를 정비했습니다. 신문왕은 또한 지방 행정 조직을 완비하고 녹읍 폐지(689년), 식읍 제한 등을 통해 경제 정책을 개선했습니다.

 

성덕왕 (702 ~ 737)

성덕왕은 전사서를 설치하고, 공자의 화상을 국학에 안치했습니다(717년). 그는 백성에게 정전을 지급하고 법주사 쌍사자 석등과 상원사 동종을 제작했습니다(725년). 성덕왕은 당의 요청으로 발해를 공격했으나 대동강 이남 지역만을 인정받았습니다(735년).

 

경덕왕 (742 ~ 765)

경덕왕은 한화 정책을 시행하여 군현 및 중앙 관부 명칭을 중국식으로 개편하고 왕권을 강화했습니다. 그는 불국사와 석굴암을 축조하고, 세계 최고의 목판 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을 제작했습니다.

 

혜공왕 (765 ~ 780)

혜공왕의 시대는 대공의 난과 김지정의 난으로 왕권이 약화된 시기였습니다. 그는 국학을 재정비하고 오묘제를 제도화했습니다. 에밀레종도 이 시기에 완성되었습니다.

 

선덕왕 (780 ~ 785)

선덕왕은 김지정의 난을 진압하고 혜공왕이 시해된 후 즉위했습니다. 그는 패강진을 설치하고 어룡성을 개편하여 왕권을 강화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원성왕 (785 ~ 798)

원성왕은 무열계와의 왕위 싸움에서 승리한 후 즉위했습니다. 그는 독서삼품과를 설치하여 관리 등용 시스템을 개편했습니다.

 

소성왕

소성왕의 시기에는 국학의 학생에게 녹읍을 지급하는 등 교육 정책이 강화되었습니다.

 

헌덕왕 (809 ~ 826)

헌덕왕은 김헌창의 난과 김범문의 난을 진압했습니다. 그는 이차돈 순교비를 설치하고 선종의 전래를 통해 불교 문화를 장려했습니다.

 

흥덕왕 (826 ~ 836)

흥덕왕은 집사부를 집사성으로 개편하고, 청해진을 설치하여 해상 무역과 해적 방어를 강화했습니다. 청해진은 완도에 위치해 있으며, 장보고가 이 지역을 기반으로 국제 무역을 활발히 진행했습니다. 흥덕왕은 또한 사치를 금지하는 법령을 반포하여 과도한 소비를 억제했습니다.

 

신무왕

신무왕의 시대에 장보고가 큰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그는 당시 정치적 실세로서 딸의 결혼을 통해 왕실과의 결합을 모색했으나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문성왕

문성왕 시기에 장보고가 반란을 일으켰으나 결국 암살당했습니다. 이 사건은 당시 신라 내부의 정치적 긴장과 불안정을 반영합니다.

 

진성여왕 (887 ~ 897)

진성여왕은 신라의 마지막 여왕으로, 그녀의 시대는 국고 고갈과 조세 독촉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녀는 원종과 애노의 난(889년), 견훤의 난(892년)과 같은 여러 내란을 진압해야 했습니다. 또한, 최치원의 시무 10조 제시(894년)와 같은 정치적 개혁이 시도되었으나, 신라의 쇠퇴를 막기에는 부족했습니다. 진성여왕은 또한 합천 해인사 길상탑과 4산비명을 조성했습니다.

 

경명왕 (917 ~ 924)

경명왕은 고려의 건국과 견훤의 성장으로 인해 많은 도전을 받았습니다. 그의 시대는 왕권 싸움과 대야성 함락(920년)으로 고려에 의한 신라의 영토 축소를 목도했습니다.

 

경애왕 (924 ~ 927)

경애왕은 공산 전투에서 견훤에 의해 피살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신라의 불안정과 내부 취약성을 드러내는 사건이었습니다.

 

경순왕 (927 ~ 935)

경순왕은 신라의 마지막 왕으로, 고려에 항복하며 신라의 992년 역사에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그는 신라의 국가 체제를 유지하려 했으나 결국 고려에 통합되었습니다.

한국사 연도별 정리 발해

고왕, 대조영 (698 ~ 719)

대조영은 고구려의 유민을 통합하여 698년 천무령 전투에서 승리한 후 국호를 ‘진’으로 건국했습니다. 이후 당나라의 발해 군왕 책봉을 받고 국호를 발해로 개칭했습니다. 대조영은 발해의 기초를 닦고, 동북아 지역에서의 독립적인 세력을 확립했습니다.

 

무왕, 대무예 (719 ~ 737)

대무예는 연호를 인안으로 정하고 일본과의 교류를 강화하며, 일본도를 개설했습니다. 그는 발해가 고구려의 옛 땅을 수복하고 부여의 유속을 이어받았다고 선언하며, 동북아시아에서의 발해의 정체성을 강조했습니다. 732년에는 흑수부 말갈과의 연결을 시도하는 당과 대결하며 등주를 공격했고, 733년에는 요서 지역에서 당군과 격돌했습니다. 이러한 외교 및 군사 활동을 통해 발해는 동북아시아에서 세력 균형을 유지했습니다.

 

문왕, 대흠무 (737 ~ 793)

문왕은 발해의 지배 체제를 정비하며 3성 6부제를 실시하고, 주자감을 설치했습니다. 그는 신라도를 설치하고 발해의 독립성과 황제 국가로서의 지위를 강조했습니다. 762년에는 당과 친교 관계를 수립하고 문화 교류를 활발히 진행했습니다. 문왕은 또한 중경에서 상경(756년), 그리고 동경(785년)으로 천도를 여러 차례 진행하며 발해의 정치적 중심을 이동시켰습니다.

 

성왕, 대화여 (793 ~ 794)

성왕의 짧은 통치 기간 동안에 천도가 동경에서 상경으로 다시 이루어졌습니다. 그의 통치는 발해의 행정 조직과 중심지의 재배치를 통해 내부 안정을 도모하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선왕, 대인수 (818 ~ 830)

선왕은 발해의 영토 확장과 중앙 집권화에 주력했습니다. 그는 말갈족을 복속시키고, 신라와 국경을 접하면서 요동 지역으로 진출했습니다. 발해의 지방 제도를 정비하여 5경 15부 62주 체제를 확립하고, 동북아 지역에서의 발해의 영향력을 강화했습니다.

 

애왕, 대인선 ( ~ 926)

애왕은 발해의 마지막 왕으로, 그의 시대에 거란의 침입으로 인해 발해는 멸망했습니다. 발해의 멸망은 동북아시아 지역의 권력 구조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왔으며, 거란에 의해 동단국이 설립되었습니다.

한국사 연도별 정리 고려시대

한국사 연도별 정리 고려

태조 (918~943)

태조 왕건은 918년 고려를 창건하고, 919년 철원에서 송악(현재의 개성)으로 수도를 옮겼습니다. 그는 호족을 회유하고 통제하기 위해 사심관 제도와 기인 제도를 도입하며 중앙 집권을 강화했습니다. 940년에는 역분전 제도를 통해 충성도와 인품을 기준으로 토지를 지급하여 민생을 안정시켰습니다. 대외적으로는 거란을 배척하고 북진 정책을 통해 영토를 확장했습니다.

 

혜종 (943~945)

혜종은 왕규의 난을 945년에 진압하며 내부 안정을 도모했습니다. 그의 짧은 통치 기간 동안에 큰 변화는 제한적이었으나, 왕규의 난 진압은 중앙 권력의 안정성을 강조한 사건이었습니다.

 

정종 (945~949)

정종은 946년에 승려의 면학을 목적으로 광학보를 설치하고, 947년에 경보를 설치하여 불경 간행을 촉진했습니다. 그는 서경으로의 천도를 시도했으나, 완료되지는 않았습니다. 대외적으로 947년에 거란의 침입에 대비하여 광군사를 설치했습니다.

 

광종 (949~975)

광종은 949년에 주현공부법과 956년에 노비안검법을 시행하고, 958년에 쌍기 과거제도를 도입하여 관리 선발의 기준을 정비했습니다. 963년에는 제위보를 설치하고, 968년에 논산 관촉사에 석조 미륵보살 입상을 조성하며 불교 문화를 장려했습니다.

 

경종 (975~981)

경종은 976년에 시정 전시과를 통해 관리들의 공복 제도를 기준으로 개편하고, 인품을 중시하는 행정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성종 (981~997)

성종은 최승로의 시무 28조를 981년에 수용하여 유교적 정치 이념을 실현하고, 12목 최초로 지방관을 파견하고, 983년에 동경으로 천도했습니다. 통치 조직을 정비하여 2성 6부, 중추원, 삼사 등을 설치하고, 지방 행정 조직을 완비했습니다.

 

숙종 (997~1009)

숙종은 여진의 1차 침입을 겪었습니다. 그는 1001년에 속장경을 발간하고, 1003년에 별무반을 조직하여 국방을 강화했습니다. 숙종은 또한 다양한 법률과 제도를 개혁하여 국가의 안정과 발전을 도모했습니다.

 

예종 (1009~1034)

예종은 동북9성을 1010년에 건립하고, 여진 2차 침입에 대응했습니다. 그는 또한 환부를 개설하고, 고려의 사회 경제 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한 다양한 조치를 시행했습니다.

 

현종 (1031~1034)

현종은 거란의 2차 침입에 맞서 1031년부터 1034년까지 초조대장경의 간행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7대 실록” 편찬을 시작하고, 현화사와 금종보 등을 설치했습니다. 또한, 연등회와 팔관회를 부활시켜 문화 행사를 장려했습니다.

 

정종 (1034~1046)

정종은 왕위에 오른 후 1034년부터 1046년까지 통치했습니다. 그는 교육 및 문화 발전에 집중했으며, 1046년에는 경사 6학을 국자감에 설치하여 학문과 교육의 발전을 추진했습니다.

 

문종 (1046~1083)

문종은 1046년부터 1083년까지 장기간에 걸쳐 통치하면서 과거 제도의 개혁, 교육 및 문화 정책을 강화했습니다. 1076년에는 경정 전시과를 도입하여 관리들의 녹봉을 정비했으며, 고려의 문화 유산인 불국사 석탑과 같은 건축물을 건립하여 불교 문화를 장려했습니다.

 

성종 (1083~1094)

성종은 1083년부터 1094년까지 통치하며, 최승로의 시무 28조를 수용하여 유교적 정치 이념을 실현했습니다. 그는 12목 최초로 지방관을 파견하고, 지방 행정 체계를 정비했습니다. 1094년에는 초조대장경을 간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숙종 (1095~1105)

숙종은 1095년부터 1105년까지 통치하며, 여진의 1차 침입을 겪었습니다. 그는 1097년에 속장경을 발간하고, 1099년에 별무반을 조직하여 국방을 강화했습니다. 숙종은 다양한 법률과 제도를 개혁하여 국가의 안정과 발전을 도모했습니다.

 

예종 (1105~1122)

예종은 1105년부터 1122년까지 통치하며, 동북9성을 1107년에 건립하고, 여진 2차 침입에 대응했습니다. 그는 또한 환부를 개설하고, 고려의 사회 경제 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한 다양한 조치를 시행했습니다.

 

인종 (1122~1146)

인종은 1122년부터 1146년까지 통치하며 이자겸의 난을 1126년에 겪었습니다. 그는 “삼국사기”를 1145년에 편찬하고, 경사 6학을 국자감에 설치하여 학문과 문화의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인종은 또한 강예재와 같은 학문 재단을 설립하여 유학을 장려했습니다.

 

의종 (1146~1170)

의종은 1146년부터 1170년까지 통치하며 무신 정변을 겪으며, 정중부의 난으로 큰 정치적 변동을 경험했습니다. 그는 “편년통록”을 폐지하고, 다양한 역사 서적을 편찬하여 국가의 문화 유산을 보존하려 노력했습니다.

 

명종 (1170~1197)

명종은 1170년부터 1197년까지 통치하며, 정중부, 경대승, 이의민, 최충헌 등 여러 무신들의 영향력 아래에서 국가를 이끌었습니다. 그는 김보당의 난과 교종 승려의 난을 진압하며 내부 안정을 추구했습니다.

 

신종 (1197~1204)

신종은 1197년부터 1204년까지 통치했습니다. 그의 시대는 최충헌의 강력한 영향력 아래 있었으며, 만적의 난 (1198)과 이비, 패좌의 난 (1202)과 같은 사건들이 국내 안정을 위협했습니다.

 

희종 (1204~1211)

희종은 1204년부터 1211년까지 통치하며, 최충헌이 교정도감을 설치한 1209년 등의 제도 개혁을 통해 국가 구조를 재정비하려 노력했습니다.

 

고종 (1213~1259)

고종은 1213년부터 1259년까지 장기간 통치하며 몽골의 여러 차례 침입에 맞서 싸웠습니다. 몽골과의 전쟁 중 여러 도시가 파괴되고 1232년에는 강화도로 천도했습니다. 그는 1236년에 시작된 재조대장경 제작과 1258년 쌍성총관부 설치 등을 통해 국가의 문화적, 행정적 기반을 강화했습니다.

 

원종 (1259~1274)

원종은 1259년부터 1274년까지 통치했으며, 몽골의 지배 하에 있었습니다. 그는 1270년에 개경으로 환도했으며, 이 시기에 삼별초의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충렬왕 (1274~1308)

충렬왕은 두 번에 걸쳐 통치했으며 (1274-1298, 1298-1308), 국제 관계에서 능동적인 외교를 펼쳤습니다. 그는 1281년에 일연이 편찬한 『삼국유사』와 같은 중요한 문화 유산을 보호 및 발전시켰습니다. 또한, 그의 시대에는 안향이 성리학을 전래하여 유교 학문의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충선왕 (1308~1313)

충선왕은 원으로 소환되어 1308년부터 1313년까지 통치했습니다. 그는 심양왕과 고려왕의 지위를 동시에 갖는 복잡한 정치적 상황을 관리했습니다.

 

충숙왕 (1313 ~ 1339, 1330~1332 제외)

충숙왕은 두 번의 임기 동안 통치하며, 1318년에 찰리변위도감을 설치하고 분사제도를 폐지했습니다. 그는 또한 1339년까지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고려의 정치적 안정을 도모했습니다.

 

충혜왕 (1330~1332, 1339~1344)

충혜왕은 두 번에 걸쳐 통치하며, 편민조례추변도감을 설치하여 사회적 불안정을 관리했습니다.

 

충목왕 (1344~1348)

충목왕은 1344년부터 1348년까지 짧은 기간 동안 통치했습니다. 그는 응방 혁파와 정치도감 설치를 통해 행정 체계를 개혁하려 시도했습니다.

 

충정왕 (1348~1351)

충정왕은 1348년부터 1351년까지 통치하며, 농업 기술 서적인 『농상집요』를 수입하여 농업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공민왕 (1351~1374)

공민왕은 초기 반원 정책을 통해 몽골의 영향력을 배제하고, 고려의 독립성을 회복하려 노력했습니다. 그는 1367년 성균관을 정비하고, 1372년에 자제위를 설치했습니다.

 

우왕 (1374~1388)

우왕은 1374년부터 1388년까지 통치하며, 왜구의 빈번한 침입과 내부적 혼란을 경험했습니다. 1376년과 1380년에 왜구 침입에 대응했으며, 1377년 화통도감을 설치하여 통신과 국방을 강화했습니다. 『직지심체요절』은 1377년에 제작된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인쇄본으로, 고려의 문화적 성취를 나타냅니다. 우왕의 재위 말기에는 이인임이 집권하면서 국가 운영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창왕 (1388~1389)

창왕은 1388년부터 1389년까지 짧은 기간 동안 통치했습니다. 그의 재위 기간 동안 쓰시마 섬을 정벌하는 등 외교적 활동을 시도했으나, 내부적으로는 위화도 회국과 같은 사건으로 정치적 혼란이 지속되었습니다.

 

공양왕 (1389~1392)

공양왕은 1389년부터 1392년까지 통치하며, 고려의 마지막 왕으로서 몽골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 노력했습니다. 그는 무과와 급전도감을 설치하고, 과전법을 실시하는 등 행정과 군사 시스템을 개혁했습니다. 그의 통치 기간 동안에 조선이 건국되며 고려는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습니다.

한국사 연도별 정리 조선시대

한국사 연도별 정리 조선시대

한국사 연도별 정리 조선

태조 (1392~1398)

태조 이성계는 1392년 조선을 건국하고 한양으로 천도했습니다(1394년). 정도전을 중용하여 경복궁 건설(1395년), 종묘와 사직의 제도를 확립하고, 여러 법전인 『조선경국전』, 『경제문감』 등을 편찬했습니다. 무인정사 사건(1398년)이 발생하여 왕자들 간의 갈등이 심화되었습니다.

 

정종 (1398~1400)

정종은 1398년부터 1400년까지 짧은 기간 동안 통치하면서 개경으로 천도했지만(1399년), 2차 왕자의 난으로 다시 한양으로 천도하는 등 정치적 불안정을 겪었습니다.

 

태종 (1400~1418)

태종은 1400년에 즉위하여 한양 재천도를 확고히 하고, 6조 직계제를 확립하여 중앙 집권 체제를 강화했습니다. 승정원, 의금부, 사간원을 설치하고, 양인개병제와 호패법을 도입하여 행정과 군사 시스템을 정비했습니다.

 

세종 (1418~1450)

세종은 1418년에 즉위하여 조선의 문화적, 과학적 황금기를 이끌었습니다. 집현전을 확대하고, 의정부 서사제를 실시했습니다. 세종은 『훈민정음』(1443년)을 창제하여 한글을 반포했으며, 『농사직설』, 『용비어천가』 등 수많은 문학 및 과학 작품을 집대성했습니다. 이종무의 쓰시마 정벌(1419년)과 계해약조(1443년) 등 대외 정책도 활발히 전개했습니다.

 

문종 (1450~1452)

문종은 짧은 기간 동안 통치하면서 세종의 정책을 이어받았습니다. 그는 『고려사』, 『고려사절요』, 『동국병감』 등의 역사 서적 편찬을 지원했습니다.

 

세조 (1455~1468)

세조는 1455년에 즉위하여 정치 체제를 개편했으며, 단종 복위 운동을 진압하고 집현전을 폐지했습니다. 『경국대전』 편찬을 시작하고, 오가작통법과 직전법을 강화하여 토지 정책을 개혁했습니다. 그는 또한 이시애의 난을 진압하며 내부 안정을 꾀했습니다.

 

예종 (1468~1469)

예종은 아주 짧은 기간 동안 통치했으며, 주요한 법적 개혁이나 정책 변경은 보고되지 않았습니다.

 

성종 (1469~1494)

성종은 1469년에 즉위하여 『경국대전』을 완성하고, 사회 및 문화 정책에 큰 변화를 주었습니다. 그는 창경궁을 건립하고(1484년), 여러 학술 작품과 문헌을 편찬하며 유학과 문학을 장려했습니다.

 

연산군 (1494~1506)

연산군은 1494년에 즉위하여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많은 공포 정치를 펼쳤습니다. 그의 통치 기간 동안 많은 문화인과 학자들이 숙청되었으며, 정치적 반대자들에 대한 탄압이 이루어졌습니다.

 

중종 (1506~1544)

중종은 1506년에 즉위하여 사림파의 지지를 받았습니다. 그는 정치 체제를 개혁하려 노력했으며, 조광조 등이 주도한 도학 정치를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1510년 3포 왜란과 같은 외부 위협에 직면하기도 했습니다.

 

명종 (1545~1567)

명종은 1545년부터 1567년까지 통치했으며, 그의 시대는 사림파의 영향력이 강화되었습니다. 1547년 정미약조를 통해 조선과 일본 간의 교류를 정비했으며, 1555년 을묘왜변을 겪으며 외교적 도전에 직면했습니다. 그는 임꺽정 등 농민 봉기를 진압하고, 선교 양정과 선과 부활 등을 통해 군사제도를 개편했습니다.

 

선조 (1567~1608)

선조는 1567년부터 1608년까지 장기간 통치하며, 조선은 임진왜란(1592~1598)과 병자호란(1636)이라는 큰 외침을 겪었습니다. 선조는 1575년 을해당론을 시작으로 정치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시기를 맞이했으며,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한양을 포기하고 북으로 피신하는 등 큰 혼란을 겪었습니다. 전쟁을 통해 군사 제도를 강화하고 국방을 중시하는 정책을 펼쳤습니다.

 

광해군 (1608~1623)

광해군은 1608년부터 1623년까지 통치하며, 내정 안정과 대동법 시행을 통한 경제 정책 강화에 주력했습니다. 그는 또한 1609년 기유약조를 통해 일본과의 관계를 재정립하고, 부산포만 개항하여 외교와 무역을 활성화했습니다. 그의 재위 기간 중에는 중립 외교 정책을 유지하려 했으나, 내부의 반발로 인해 결국 1623년 인조반정에 의해 폐위되었습니다.

 

인조 (1623~1649)

인조는 1623년에 즉위하여 인조반정을 통해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는 청나라와의 관계를 재정립하려 했으나, 1627년 정묘호란과 1636년 병자호란을 겪으며 큰 군사적 패배를 경험했습니다. 인조는 이후 청나라에 사대하며 조선의 외교 정책에 큰 변화를 가져왔고, 이 시기에 여러 가지 군사 및 사회 제도를 개혁하려 노력했습니다.

 

효종 (1649~1659)

효종은 1649년에 즉위하여 북벌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그는 청나라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려 하였으며, 특히 1654년과 1658년에 나선 정벌을 진행하여 조선의 군사적 입지를 강화하려 했습니다. 그는 또한 국방을 강화하기 위해 군사 제도를 개편하고 적극적으로 외교 정책을 펼쳤습니다.

 

현종 (1659~1674)

현종은 1659년에 즉위하여 상대적으로 평화로운 내정을 유지하려 했습니다. 그는 국내 법제를 정비하고, 특히 1669년에 발행된 『경세유표』와 같은 정치 경제 서적을 통해 통치 이념과 정책을 전파했습니다. 현종은 또한 1674년 갑인예송 사건을 통해 세력 균형을 유지하려 노력했습니다.

 

숙종 (1674~1720)

숙종은 1674년에 즉위하여 1720년까지 장기간 통치했습니다. 그는 정치적으로 탕평책을 적극 추진하여 여러 파벌 간의 균형을 시도했습니다. 숙종의 시대에는 1694년 갑술환국을 통해 장희빈을 복위시키는 등 환관과 궁중 여인들의 권력이 강화되었습니다. 또한, 1701년 무고의 옥으로 유명한 사건을 포함하여 사림파 학자들의 숙청이 여러 차례 일어났습니다.

 

경종 (1720~1724)

경종은 1720년에 즉위하여 단 4년 간 통치했습니다. 그의 짧은 통치 기간 동안에도 중요한 정치적 사건들이 있었으며, 1721년 신축사화와 1722년 임인사화가 발생하여 정치적 숙청이 이루어졌습니다.

 

영조 (1724~1776)

영조는 1724년에 즉위하여 1776년까지 통치하며, 조선 중기의 안정적인 시기를 이끌었습니다. 그는 1725년 탕평 교서를 발표하고 을사처분을 통해 정치적 균형을 유지하려 했습니다. 1728년 이인좌의 난을 진압하고, 1731년 노비종모법을 시행하는 등 사회적 개혁을 추진했습니다. 영조는 또한 유교 경전의 학습을 장려했으며, 1762년 임오화변과 같은 정치적 사건을 통해 왕권을 강화했습니다.

 

정조 (1776~1800)

정조는 1776년에 즉위하여 1800년까지 통치했습니다. 그는 규장각을 설치하고 화성을 축조하여 행정과 문화의 중심지를 이전하려 시도했습니다. 정조는 정치, 경제, 교육 및 법률 개혁을 추진하며 조선의 근대화를 도모했습니다. 그의 시대에는 『대전통편』과 『무예도보통지』 등 중요한 문헌이 편찬되었습니다.

 

순조 (1800~1834)

순조는 1800년에 즉위하여 1834년까지 통치했습니다. 그의 통치 기간 동안 1801년 신유박해와 같은 천주교 탄압이 일어났으며, 규장각 학자들의 축출과 함께 많은 정치적 변동이 있었습니다. 순조는 또한 1811년 홍경래의 난을 진압하고 1818년 『목민심서』를 포함한 다양한 정책 개선을 시도했습니다.

 

헌종 (1834~1849)

헌종은 1834년에 즉위하여 1849년까지 통치했습니다. 그는 정하상을 중용하여 정치적 안정을 시도했으나, 1839년 기해박해와 1846년 병오박해를 통해 천주교도들에 대한 강력한 탄압이 이루어졌습니다.

 

철종 (1849~1863)

철종은 1849년에 즉위하여 1863년까지 통치했습니다. 그의 통치 기간 동안 1851년 신해허통을 통해 사회 경제 정책의 변화를 시도했으며, 1860년 동학의 창시자 최제우의 활동이 시작되었습니다. 철종의 시대에는 또한 1862년 임술 농민 봉기가 발생하는 등 사회적 불안이 지속되었습니다.

 

고종 (1863~1907)

고종은 1863년부터 1907년까지 장기간 통치하며, 조선의 근대화와 개혁을 추진했습니다. 그의 통치 기간 동안, 1876년 강화도 조약을 통해 조선은 일본과의 국제적 문을 열었으며, 이후 여러 개화 정책을 시행했습니다. 고종은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로 즉위하여 조선의 독립을 강화하려 했으나, 내외적 압박 속에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의 재위 기간 중 1905년 을사늑약으로 조선은 일본의 보호국이 되었고, 고종은 1907년 강제로 퇴위당했습니다.

 

순종 (1907~1910)

순종은 1907년에 즉위하여 조선 왕조의 마지막 왕으로, 1910년 한일병합 조약으로 인해 조선은 공식적으로 일본에 병합되었습니다. 순종의 짧은 통치 기간은 일본의 강력한 통제와 간섭 속에서 진행되었으며, 병합 후에는 왕으로서의 모든 권한을 상실했습니다.

한국사 연도별 정리 근대사

한국사 연도별 정리 근대사 1
근대사 2
근대사 3
근대사 4
근대사 5

한국사 연도별 정리 근대

한국사 연도별 정리 1862년~1875년

  • 1862년: 임술농민봉기, 삼정이정청 설치
  • 1863년: 고종 즉위 (흥선대원군 섭정)
  • 1865년:
    • 경복궁 중건
    • 삼군부 설치
    • 대전회통
    • 만동묘 철폐
  • 1866년:
    • 당백전 발행
    • 1월: 병인박해
    • 7월: 제너럴 셔먼호 사건 (대동강, 박규수)
    • 9월: 병인양요 (문수산성 한성근, 정족산성 양헌수)
    • 척화주전론 (이항로 ⌜화서집⌟, 기정진)
  • 1868년:
    • 4월: 메이지 유신
    • 5월: 오페르트 도굴 사건
  • 1870년: 조선국교제시말내탐서(독도 조선 땅 규정)
  • 1871년:
    • 4월: 신미양요 (광성보 어재연)
    • 4월 25일: 척화비
  • 1873년: 흥선대원군 실각
  • 1875년 9월 20일: 운요호 사건

한국사 연도별 정리 1876년~1885년

  • 1876년:
    • 왜양일체론 (최익현 ⌜5불가소⌟)
    • 2월 3일: 강화도 조약 (조일 수호 조규)
    • 2월 26일: 부산포 개항
    • 4월 4일: 1차 수신사 (김기수 ⌜일동기유⌟)
    • 7월: 조일 수호 조규 부록 (10리, 일본화폐)
    • 7월: 조일 무역 규칙 (통상 장정, 무관세, 쌀 무제한 유출)
  • 1877년: 독도 태정관 지령 (일본 내부 명령)
  • 1880년:
    • 4월: 원산포 개항
    • 5월 28일: 2차 수신사 (김홍집이 황쮼셴 조선책략 유입)
  • 1881년:
    • 2월: 영남만인소 (이만손, 조선책략 비판)
    • 4월 10일: 조사시찰단 (박정양, 홍영식, 유길준, 어윤중)
    • 4월 23일: 별기군 창설, 5군영 → 2영
    • 9월: 영선사 (김윤식 + 유학생38명)
  • 1882년:
    • 4월 6일: 조미 수호 통상 조약 (조선책략 영향)
    • 4월 21일: 영국과 수교
    • 6월 9일: 임오군란 (5군영 부활→4영 개편)
    • 7월: 제물포 조약 (군인 주둔)
    • 8월 8일: 3차 수신사 (박영효 배상금 협상, 태극기)
    • 8월 20일: 독도 공도 정책 폐지
    • 8월 23일: 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 (내륙진출)
    • 10월 12일: 간도에 서북 경략사 어윤중 파견
    • 11월: 대동은전(대동폐) ~1883. 06
    • 12월: 우정사 설치
  • 1883년:
    • 1월: 인천(제물포) 개항
    • 3월: 기기창 (김윤식, 무기공장)
    • 6월: 상회사(대동상회) 설립
    • 7월: 전환국 당오전 발행 (묄렌도르프 추천)
    • 7월: 조일 통상 장정 (최혜국, 관세, 방곡령)
    • 8월: 혜상공국 설립
    • 8월: 원산학사
    • 8월: 동문학
    • 8월: 박문국 (박영효, 한성순보 간행)
  • 1884년 10월: 한성순보
  • 1884년 10월: 한성순보 발행, 박문국 관련 (관보, 순한문)
  • 1884년 11월 26일: 독일과 수교
  • 1884년 12월: 우정총국(홍영식)
  • 1885년 2월 29일: 광혜원(알렌) → 제중원 → 세브란스(1904)
  • 1885년 3월 1일: 텐진 조약
  • 1885년 3월 4일: 전신 개통 (파발이 사라짐)
  • 1885년 7월: 간도 토문 감계사 이중하 파견
  • 1885년 8월 28일: 배재학당 (아펜젤러, 기독교, 출신:이승만)

한국사 연도별 정리 1886년~1895년

  • 1886년 1월 25일: 정신여학교 (엘레스, 기독교)
  • 1886년 2월 6일: 노비세습제 폐지 (고종)
  • 1886년 3월: 경신학교(언더우드, 기독교, 연희전문)
  • 1886년 5월 31일: 이화학당 (스크랜턴, 기독교, 최초 여학교)
  • 1886년 6월 3일: 프랑스와 수교
  • 1886년 9월 23일: 육영공원 설립
  • 1887년 4월 10일: 전등 가설(경복궁 내)
  • 1888년 6월: 한성주보 발행 (관보, 최초 국한문 혼용, 최초 상업성 광고)
  • 1888년 8월 20일: 조러 육로 통상장정(경흥 개방)
  • 1889년 9월: 방곡령 사건(함경도 조병식, 황해도 조병철)
  • 1892년 10월: 1차 교조 신원 운동(공주ㆍ삼례 집회)
  • 1892년: 전환국 백동화 발행
  • 1893년 2월: 2차 교조 신원 운동(손병희 서울 광화문 복합 상소)
  • 1893년 3월: 3차 교조 신원 운동(보은 집회, 척왜양창의)
  • 1894년 1월 10일: 고부 봉기 (조병갑, 사발통문)
  • 1894년 1월: 군수 박원명 선정 BUT 안핵사 이용태 만행
  • 1894년 3월: 백산 봉기 (농민군 4대강령, 백산 봉기격문)
  • 1894년 4월 6일: 황토현 전투 (농민 vs 지방군)
  • 1894년 4월 23일: 황룡촌 전투 (농민 vs 관군)
  • 1894년 4월 27일: 전주성 점령
  • 1894년 5월 5일: 청군 상륙 (아산만)
  • 1894년 5월 6일: 일본군 상륙 (인천 → 서울)
  • 1894년 5월 7일: 전주화약 체결
  • 1894년 6월 7일: 집강소 설치 (패정 개혁안 실천)
  • 1894년 6월 11일: 교정청 설치
  • 1894년 6월 21일: 일본의 경복궁 점령
  • 1894년 6월 23일: 청일전쟁 발발
  • 1894년 6월 25일: 1차 갑오개혁(군국기무처 설치)
  • 1894년 9월: 2차 농민 봉기(남접+북접=논산 집결)
  • 1894년 11월 11일: 공주 우금치 전투 패배
  • 1894년 11월 21일: 2차 갑오개혁(군국기무처 폐지, 중추원 설치)
  • 1894년 12월 2일: 전봉준 체포
  • 1894년 12월 13일: 독립서고문, 홍범 14조 반포
  • 1895년 2월: 교육입국조서 반포
  • 1895년 4월: 한성 사범학교ㆍ한성 외국어학교 (육영공원 → 한성 외국어학교)
  • 1895년 4월: 청일전쟁 일본 승리 (시모노세키 조약)
  • 1895년 4월: 삼국 간섭(러, 프, 독)
  • 1895년 7월: 3차 김홍집 내각(친러 내각)
  • 1895년 8월 20일: 을미사변
  • 1895년 8월 24일: 3차 을미개혁(4차 김홍집 내각)
  • 1895년 10월: 을미의병 (유인석, 이소응, 허위, 기우만, 최익현)
  • 1895년 10월 12일: 1차 아관파천(춘생문 사건)
  • 1895년 11월 15일: 단발령
  • 1895년 11월 17일: 태양력 → 양력 96. 01. 01

한국사 연도별 정리 1896년~1900년

  • 1896년 1월 13일: 관리들의 검정 두루마기 착용
  • 1896년 2월 11일: 2차 아관파천
  • 1896년 5월 14일: 베베르-고무라 각서
  • 1896년 6월 9일: 로바노프-야마가타 협정
  • 1896년 7월: 독립신문 (서재필, 순한글+영문판)
  • 1897년 2월: 고종 경운궁으로 환궁
  • 1897년 2월: 한성은행 (대한제국 설립)
  • 1897년 3월 16일: 교전소 설치
  • 1897년 10월 1일: 목포 개항
  • 1897년 10월 10일: 숭실학교(베어드, 기독교, 평양)
  • 1897년 10월 12일: 대한제국 선포: 광무 개혁
  • 1897년 12월 26일: 정동 교회
  • 1897년: 당현 금광 (독일 이권 침탈)
  • 1898년 1월 28일: 전화 개통
  • 1898년 1월: 한성전기회사 (미:콜브란+황실지원)
  • 1898년 2월: 독립협회 활동
  • 1898년 3월: 독립협회 만민 공동회 개최
  • 1898년 5월 29일: 명동 성당
  • 1898년 6월 30일: 황국협회 (← 상리사 ← 혜상공국)
  • 1898년 7월 1일: 무관학교 설립
  • 1898년 8월 10일: 독립협회 관민 공동회 개최
  • 1898년 8월: 황국 중앙 총상회 (with 독립협회)
  • 1898년 11월 5일: 흥화학교(민영환)
  • 1898년 12월: 독립협회 해산
  • 1899년 1월: 대한천일은행 (→ 우리 은행)
  • 1899년 4월 24일: 내부병원 → 광제원
  • 1899년 5월 1일: 군산 개항
  • 1899년 5월 3일: 전차(서대문~청량리)
  • 1899년 5월: 상무사 설치 (← 황국협회)
  • 1899년 5월: 상공학교
  • 1899년 6월 2일: 원수부 설치 (국방력 강화)
  • 1899년 6월: 교전소 → 법규교정소(대한국 국제 선포)
  • 1899년 8월 17일: ★대한국 국제(헌법) 선포★
  • 1899년 9월 11일: ★한청 통상 조약★
  • 1899년 9월: 경성 의학교
  • 1899년 9월 18일: 경인선 개통
  • 1900년 1월 1일: 만국 우편 연합 가입
  • 1900년 2월: 활빈당 (대한 사민 논설)
  • 1900년 4월 17일: 관리의 양복 착용 법규화(문관복장규칙)
  • 1900년 6월: 서북 철도국 설치 (for 경의선 설치)
  • 1900년 7월: 광제원 (← 내부병원, 1899)
  • 1900년 8월: 광무학교
  • 1900년 10월 3일: 관립 한성중학교
  • 1900년 10월 25일: 울릉도, 독도 → 울릉군(대한제국칙령)
  • 1900년 11월: 잠업시험장 설치
  • 1900년: 블라디보스톡 해삼위 통상 사무관 파견
  • 1900년: 직산 탄광 (일본 이권 침탈)

한국사 연도별 정리 1901년~1905년

  • 1901년 1월: 조선은행 폐쇄(영업부진)
  • 1901년 3월: 간도 변계 경무서 설치
  • 1901년 10월 2일: 지계아문(지계 발급)
  • 1901년: 덕수궁 중명전
  • 1902년 1월 30일: 1차 영일 동맹
  • 1902년 3월: 지계아문(양지아문 흡수 통합)
  • 1902년: 평식원 설치(도량형 통일) cf_경시서
  • 1902년 7월: 간도시찰원 이범윤 파견
  • 1903년: 간도관리사 이범윤 임명
  • 1903년: 미국 하와이 최초 동식적 노동 이민
  • 1903년: 러시아 용암포 점령
  • 1904년 1월 21일: 대한제국 중립 선언
  • 1904년 2월: 진보회
  • 1904년 2월 8일: 러일전쟁
  • 1904년 2월 23일: 한일 의정서
  • 1904년 5월: 대한 시설 강령
  • 1904년 6월 29일: 일본 경원선 부설권 획득
  • 1904년 7월 13일: 보안회
  • 1904년 8월 18일: 유신회
  • 1904년 8월 20일: 일진회
  • 1904년 8월 22일: 제 1차 한일 협약
  • 1904년 9월 3일: 세브란스 병원
  • 1905년 1월 1일: 경부선 개통
  • 1905년 1월: 금본위제 실시
  • 1905년 2월: 일본이 독도를 일방적 편입
  • 1905년 4월: 양정의숙
  • 1905년 4월: 공립 협회
  • 1905년 5월 5일: 보성전문학교
  • 1905년 7월 27일: 가쓰라ㆍ테프트 밀약
  • 1905년 8월 12일: 제2차 영일동맹
  • 1905년 9월 5일: 포츠머스 강화조약
  • 1905년 11월 17일: 을사조약 (2차 한일 협약)
  • 1905년 11월 20일: 시일야방성대곡
  • 1905년 11월 30일: 민영환 자결
  • 1905년 12월 1일: 천도교
  • 1905년 12월: 을사의병
  • 1905년 12월: 미국에 헐버트 특사 파견

한국사 연도별 정리 1906년~1910년

  • 1906년 2월: 통감부 설치
  • 1906년 2월: 을사5적 암살단
  • 1906년 3월: 농공은행
  • 1906년 4월 3일: 경의선 개통
  • 1906년 4월: 대한 자강회
  • 1906년 5월 1일: 휘문의숙
  • 1906년 5월: 숙명여학교
  • 1906년 6월 17일: 만세보
  • 1906년 8월: 서전서숙
  • 1906년 10월 19일: 경향신문
  • 1906년 10월 31일: 토지 가옥 증명 규칙
  • 1906년: 울릉도 독도 경상도로 편입 (강원도에서)
  • 1907년 1월 6일: 평양 대부흥회 (개신교)
  • 1907년 2월: 국채 보상운동
  • 1907년 4월: 헤이그 특사 파견
  • 1907년 5월 5일: 유년필독
  • 1907년 6월: 만세보 폐간 → 대한신문 (이인직 인수)
  • 1907년 7월 20일: 고종 퇴위
  • 1907년 7월 24일: 정미 7조약(한일 신협약)
  • 1907년 7월 24일: 신문지법
  • 1907년 7월 24일: 보안법
  • 1907년 7월 8일: 국문 연구소 설립 (지석영, 주시경)
  • 1907년 7월 31일: 군대 해산
  • 1907년 8월 1일: 정미 의병 전쟁
  • 1907년 8월 2일: 경운궁→덕수궁, 연호를 융희로 변경
  • 1907년 8월 27일: 순종 즉위식
  • 1907년 10월 24일: 대한의원 (← 광제원, 1900)
  • 1907년 11월 13일: 순종 처소 창덕궁으로 옮김
  • 1907년 11월 10일: 대한 협회
  • 1907년 11월: 13도 창의군 창설
  • 1907년 12월: 오산학교
  • 1907년 or 1908년: 대성학교
  • 1908년 1월: 서울 진공 작전
  • 1908년 3월: 스티븐스 사살
  • 1908년 4월 27일: 명동학교
  • 1908년 4월 29일: 신문지법 개정
  • 1908년 5월 12일: 태극서관
  • 1908년 7월 26일: 원각사
  • 1908년 8월 26일: 사립학교령, 학회령 (1908. 10. 01 실시)
  • 1908년 8월 27일: 독사신론
  • 1908년 11월: 원각사에서 공연 (은세계, 치악산)
  • 1908년 12월 28일: 동양 척식 주식회사 설립
  • 1908년: 금수회의록 (안국선)
  • 1908년: 소년 (최남선, 해에게서 소년에게)
  • 1908년: 경부철도가 (최남선)
  • 1909년 1월 5일: 대종교
  • 1909년 2월 18일: 대한문전 (유길준)
  • 1909년 2월 23일: 출판법
  • 1909년 7월: 기유각서 (사법권 박탈)
  • 1909년 9월: 간도 협약
  • 1909년 9월 11일: 대동교
  • 1909년 10월: 한국은행 (일본 은행)
  •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정미의병참모중장) 의거
  • 1909년 12월: 이완용 저격 시도 (이재명)
  • 1910년: 덕수궁 석조전
  • 1910년: 국어문법 (주시경, 박문서관)
  • 1910년 2월 14일: 안중근 뤼순 감옥에서 사형
  • 1910년 3월: 임시 토시조사국 설치
  • 1910년 5월 10일: 대한인 국민회
  • 1910년 6월: 경찰권 박탈
  • 1910년 6월: 13도 의군 결성
  • 1910년 7월: 자유종
  • 1910년 8월: 성명회
  • 1910년 8월 29일: 한일 합병 조약
  • 1910년 10월 1일: 조선 총독부 (총독: 데라우치)
  • 1910년 10월: 조선 광문회
  • 1910년 11월: 안악사건
  • 1910년 12월 15일: 즉결 처분권 (범죄 즉결례)
  • 1910년 12월 29일: 회사령 (허가제)

한국사 연도별 정리 1911년~1920년

  • 1911년 5월: 경학사 설립
  • 1911년 6월: 신흥 강습소 설립
  • 1911년 6월 3일: 사찰령 발표
  • 1911년 7월: 105인 사건 발생
  • 1911년 8월 23일: 1차 조선 교육령 발표
  • 1911년 9월 1일: 삼림령 발표
  • 1911년 10월 20일: 사립학교 규칙 발표
  • 1911년: 도로규칙 발표
  • 1912년 3월 15일: 조선 태형령 발표
  • 1912년 4월 1일: 경찰범 처벌규칙 발표
  • 1912년 7월: 동제사 설립
  • 1912년 9월: 독립의군부 설립
  • 1912년 또는 1914년: 부민단 설립
  • 1912년: 한민 학교 설립
  • 1913년 5월 13일: 흥사단 설립
  • 1913년: 송죽(형제)회 설립
  • 1913년: 간민회 설립
  • 1914년 3월 16일: 지세령 발표, 1918년 개정
  • 1914년 5월: 기성(볼단) 설립
  • 1914년 9월: 대한 광복군 정부 설립
  • 1914년 7월 28일: 1차 세계 대전 발발
  • 1914년 9월 6일: 경원선, 호남선 개통
  • 1914년 6월 10일: (대)조선 국민 군단 설립
  • 1915년 7월 15일: 대한 광복회 설립
  • 1915년 9월 11일: 조선 물산 공진회 개최
  • 1915년 12월: 광업령 발표
  • 1915년: 대동보국단 설립
  • 1915년: (단천)자립단 설립
  • 1915년: 조선 산직 장려계 설립
  • 1915년: 조선 국민회 설립
  • 1915년: 사립학교 규칙 개정
  • 1916년: 원불교 설립
  • 1917년 1월 1일: 소설 “무정” 출판
  • 1917년 2월: 인성학교 설립
  • 1917년 5월: 전로 한족회 중앙 총회
  • 1917년 7월: 대동단결선언 발표
  • 1917년 10월: 볼셰비키 혁명
  • 1917년: 수리 조합령 발표, 1927년 개정
  • 1918년 2월: 서당규칙 발표
  • 1918년 4월 18일: 한인 사회당 설립
  • 1918년 5월 1일: 임야 조사령 발표
  • 1918년 8월: 신한청년단 설립
  • 1918년 10월: 농공은행 설립
  • 1918년 11월: 윌슨의 민족 자결주의 발표
  • 1919년 1월 1일: 대한독립선언 발표
  • 1919년 1월 24일: 고종황제 사망
  • 1919년 2월 1일: 무오 독립 선언
  • 1919년 2월 8일: 2.8 독립선언
  • 1919년 2월: 이승만 위임통치 청원서 발표
  • 1919년 3월 1일: 3.1 운동 발발
  • 1919년 3월 8일: 경성 철도 노동자 및 총독부 인쇄공 파업
  • 1919년 3월 13일: 한족회 설립
  • 1919년 3월 17일: 대한 국민 의회 설립
  • 1919년 4월 10일: 임시 의정원 구성
  • 1919년 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 헌장 공포
  • 1919년 4월 15일: 화성 제암리 사건 발생
  • 1919년 4월 13일: 상해임시정부 설립
  • 1919년 4월 23일: 한성 정부 설립
  • 1919년 5월 4일: 신흥무관학교 설립
  • 1919년 6월: 파리강화회의 파견
  • 1919년 8월: 정의단 설립
  • 1919년 9월: 대한민국 임시정부 (상하이) 설립
  • 1919년 9월 2일: 강우규 의거 (서울 남대문역)
  • 1919년 11월 9일: 의열단 설립
  • 1919년 12월: 의민단 설립
  • 1919년 12월: 북로군정서 설립
  • 1920년 3월 5일: 조선일보, 동아일보 창간
  • 1920년 3월: 서로군정서 설립
  • 1920년 3월: 극예술 협회 설립
  • 1920년 3월 31일: 회사령 철폐 (허가제 → 신고제)
  • 1920년 4월 7일: 조선 노동 공제회 설립
  • 1920년 6월 4일: 삼둔자 전투
  • 1920년 6월 26일: 조선 교육회 설립
  • 1920년 6월 7일: 봉오동 전투
  • 1920년 7월 20일: 물산장려운동 시작
  • 1920년 9월 14일: 박재혁 부산 경찰서 폭탄 투척 (의열단)
  • 1920년 10월 2일: 훈춘사건
  • 1920년 10월 21일: 청산리 대첩
  • 1920년 10월 9일: 간도 참변
  • 1920년 12월: 대한독립군단 설립
  • 1920년 12월 27일: 최수봉 밀양 경찰서 폭탄 투척 (의열단)

한국사 연도별 정리 1921년~1930년

  • 1921년 4월 21일: 북경 군사 통일 주비회 설립
  • 1921년 5월: 고려 공산당 설립
  • 1921년 6월 28일: 자유시 참변
  • 1921년 7월 1일: 연초 전매 제도 시행
  • 1921년 9월 12일: 김익상 조선 총독부 건물 폭탄 투척 (의열단)
  • 1921년 12월 3일: 조선어 연구회 설립
  • 1921년 12월 20일: 조선 불교 유신회 설립 (한용운)
  • 1922년 2월 4일: 2차 조선 교육령 발표
  • 1922년 3월 28일: 김익상 상하이에서 육군대장 다나카 저격
  • 1922년 5월 1일: 어린이날 제정
  • 1922년 8월: 대한통의부 조직
  • 1922년 11월: 민립 대학 설립 운동 시작
  • 1922년 12월: 자작회 설립
  • 1923년 1월: 조선혁명선언 발표
  • 1923년 1월 12일: 김상옥 종로 경찰서 폭탄 투척 (의열단)
  • 1923년 2월 25일: 토산 애용 부인회 설립
  • 1923년 4월: 관세 철폐
  • 1923년 4월 25일: 조선 형평사 설립
  • 1923년 5월: 토월회 설립 (연극)
  • 1923년 6월 26일: 참의부 설립
  • 1923년 8월: 암태도 소작쟁의 발생
  • 1923년 9월 1일: 관동 대학살
  • 1923년 9월 3일: 박열 사건
  • 1924년 1월 2일: 민족적 경륜 발표
  • 1924년 1월 5일: 김지섭 일본 도쿄 궁성 폭탄 투척 (의열단)
  • 1924년 4월 16일: 조선 노농 총동맹 설립
  • 1924년 4월 21일: 조선 청년 총동맹 설립
  • 1924년 5월 10일: 조선 여성 동우회 설립 (좌익 사회주의)
  • 1924년 5월 12일: 경성 제국 대학 1기 입학
  • 1924년 11월: 정의부 설립
  • 1924년 11월 2일: 동척 농장 소작 쟁의
  • 1924년: 신경향파 문학 운동 시작
  • 1925년 2월: 임시정부 2차 개헌
  • 1925년 3월 10일: 신민부 설립
  • 1925년 3월 23일: 이승만 탄핵
  • 1925년 4월 17일: 조선 공산당 설립
  • 1925년 5월 12일: 치안 유지법 발표
  • 1925년 6월: 조선사편수회 설립
  • 1925년 6월 11일: 미쓰야 협정 체결
  • 1925년 8월: 프로문학 KARF 결성
  • 1925년 9월 27일: 조선 학생 과학 연구회 발족
  • 1925년: 소설 “진달래꽃” 출판 (김소월)
  • 1926년 1월: 수양 동우회 설립
  • 1926년 4월 14일: 정우회 설립
  • 1926년 4월 25일: 순종 서거
  • 1926년 6월 10일: 6.10 만세 운동
  • 1926년 7월 8일: 조선 민흥회 설립
  • 1926년 10월 10일: 한국 독립 유일당 북경 촉성회 설립
  • 1926년 11월 3일: 정우회 선언 발표
  • 1926년 11월 4일: 가갸날 제정 (조선어 연구회)
  • 1926년 12월 28일: 나석주 의거 (의열단)
  • 1926년: 2차 산미증식계획 발표
  • 1926년: “님의 침묵” 출판 (한용운)
  • 1926년: 나운규 “아리랑” 개봉 (단성사)
  • 1927년 2월: 잡지 “한글” 창간
  • 1927년 2월 15일: 신간회 설립
  • 1927년 5월: 흥남 질소 비료 공장 설립
  • 1927년 5월 27일: 근우회 설립
  • 1927년 9월 6일: 조선 농민 총동맹 설립
  • 1927년 9월 6일: 조선 노동 총동맹 설립
  • 1927년 12월: 임시정부 3차 개헌
  • 1928년 5월 14일: 조명하 의거 (대만, 구니노미야)
  • 1928년 12월: 혁신의회 설립
  • 1928년 12월 24일: 신은행령 발표
  • 1928년: 코민테른 지시 (계급투쟁 강화)
  • 1929년 1월 13일: 원산 노동자 파업
  • 1929년 4월: 국민부 설립
  • 1929년 6월 20일: 소학교와 보통학교 규정 개정 공포
  • 1929년 7월: 문자 보급 운동 시작 (조선일보, 조선어 학회)
  • 1929년 9월: 조선 혁명당 설립 (남만주)
  • 1929년 10월: 나주역 성희롱 사건
  • 1929년 10월 24일: 경제 대공황 시작
  • 1929년 11월 3일: 광주 학생 항일 운동 발발
  • 1929년 11월: 동우회 설립
  • 1929년: 민중대회 사건 (광주 진상조사 확대 목적)
  • 1930년 1월 25일: 한국 독립당 설립 (북만주)

한국사 연도별 정리 1931년~1940년

  • 1931년 1월: 조선어 학회 설립
  • 1931년 5월: 신간회 해소
  • 1931년 7월: 만보산 사건
  • 1931년 7월 8일: 극예술 연구회 설립
  • 1931년 9월: 만주 사변 발발
  • 1931년 10월: 한인 애국단 조직
  • 1931년 가을: 추수 투쟁
  • 1931년 7월 16일: 브나로드 운동 시작 (동아일보)
  • 1932년 1월 8일: 이봉창 의거
  • 1932년 2월: 만주국 수립 (일본)
  • 1932년 3월: 상하이 사변
  • 1932년 봄: 춘황 투쟁
  • 1932년 4월: 영릉가 전투
  • 1932년 4월 29일: 윤봉길 의거
  • 1932년 7월: 조선혁명간부학교 설립
  • 1932년 9월: 쌍성보 전투
  • 1932년: 농촌진흥 운동 시작
  • 1932년 12월 10일: 소작 조정령 발표
  • 1932년 또는 1934년: 남면북양 정책
  • 1932년: 소설 “흙” 출판 (이광수)
  • 1933년 3월: 백정기 의거
  • 1933년 4월: 사도하자 전투
  • 1933년 6월 15일: 흥경성 전투
  • 1933년 6월 30일: 대전자령 전투
  • 1933년 6월: 동경성 전투
  • 1933년 9월 18일: 동북인민 혁명군 결성
  • 1933년 10월 19일: 한글 맞춤법 통일안 제정 (조선어 학회)
  • 1934년: 산미증식계획 중단
  • 1934년 5월 11일: 진단학회 설립
  • 1934년 9월 9일: 조선학 운동 시작
  • 1934년 10월: 조선 농지령 발표
  • 1935년: 문맹퇴치운동 금지
  • 1935년 7월 5일: 조선 민족 혁명당 조직
  • 1935년 11월: 한국국민당 설립
  • 1935년: 소설 “상록수” 출판 (심훈)
  • 1936년 3월: 동북 항일 연군 결성
  • 1936년 5월 5일: 조국 광복회 조직
  • 1936년 12월 12일: 조선사상범 보호관찰령 발표
  • 1936년: 애국가 작곡 (안익태)
  •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손기정 우승
  • 1937년: 민족 말살 통치 본격화
  • 1937년 4월: 조선혁명당 재건
  • 1937년 6월 4일: 보천보 전투
  • 1937년 7월 7일: 중일 전쟁 발발
  • 1937년 8월: 중아시아 강제이주
  • 1937년 9월: 한국 광복 운동 단체 연합회 설립
  • 1937년 10월 2일: 황국 신민 서사 암송 시작
  • 1937년 11월 18일: 경방단 설립
  • 1937년 12월: 조선 민족 전선 연맹 설립
  • 1938년 2월: 지원병제 실시
  • 1938년 3월: 3차 조선 교육령 발표
  • 1938년: 우리말, 우리역사 교육 금지
  • 1938년 5월 5일: 국가 총동원법 발표
  • 1938년 6월 11일: 근로보국대 설립
  • 1938년 7월 7일: 애국반 설립
  • 1938년 10월: 조선 의용대 설립
  • 1938년: 조선사 37권 편찬
  • 1939년 5월: 전국 연합 진선 협회 설립
  • 1939년 6월 1일: 징용 시작
  • 1939년 7월 3일: 경방단 규칙 발표
  • 1939년 11월 10일: 창씨개명 발표
  • 1939년 12월 27일: 조선 미곡 배급 조정령 발표 (식량 배급제)
  • 1940년 1월: 조선 영화령 발표
  • 1940년 4월: 임시정부 4차 개헌
  • 1940년 5월: 한국독립당 설립
  • 1940년 8월 10일: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폐간
  • 1940년 9월 15일: 한국 광복군 설립
  • 1940년 10월 9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4차 개헌
  • 1940년 10월: 국민 총력 조선 연맹 설립 (친일단체, 애국반)
  • 1940년: 산미증식 계획 재개

한국사 연도별 정리 1941년~1945년

  • 1941년 4월 11일: 심상소학교를 국민학교로 개명
  • 1941년 4월 20일: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설립
  • 1941년 9월: 근로보국대 설립
  • 1941년 11월: 건국 강령 발표
  • 1941년 12월 7일: 태평양 전쟁 발발
  • 1941년 12월 10일: 한국 광복군 대일, 대독 선전포고
  • 1941년 12월 12일: 조선 사상범 예방 구금령 발표
  • 1941년 12월 12일: 호가장 전투
  • 1942년 2월 15일: 한인국방경비대 설립 (미국)
  • 1942년 5월: 반소탕전 (조선 의용대)
  • 1942년 7월 10일: 조선 독립 동맹 설립
  • 1942년 7월: 조선 의용대가 조선 의용군으로 개편 (옌안)
  • 1942년 10월: 조선어 학회 사건 발생
  • 1942년: 한국 광복군, 조선의용군과 조선민족혁명당 합류
  • 1943년 3월: 4차 조선어 교육령 발표
  • 1943년 8월 9일: 조선 식량 관리령 발표 (공출 대상 확대)
  • 1943년 8월: 인도, 미얀마 전선에서 영국군 지원
  • 1943년 10월: 학도병제 발표
  • 1943년 11월: 카이로 회담 (미, 영, 중)
  • 1944년 4월: 징병제, 정신대 발표
  • 1944년 4월 22일: 임시정부 5차 개헌
  • 1944년 8월 10일: 조선 건국 동맹 설립
  • 1945년 2월: 얄타 회담 (미, 영, 소)
  • 1945년 3월 13일: 한국 광복군 독수리 작전 계획
  • 1945년 7월 24일: 조문기 부민관 의거
  • 1945년 7월: 포츠담 회담 (미, 영, 중, 소)
  • 1945년 8월 15일: 광복
  • 1945년 12월: 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 (미, 영, 소)

한국사 연도별 정리 현대사

현대사

한국사 연도별 정리 현대

1941년~1950년

  • 1941년 0월 0일: 삼균주의 (조소앙)
  • 1942년 7월 10일: 조선독립동맹 (김두봉)
  • 1942년: 조선의용군 (무정, 옌안)
  • 1943년 11월 22일: 카이로 회담 (미, 영, 중)
  • 1944년 8월: 조선건국동맹 설립
  • 1945년 2월 4일: 얄타 회담 (미, 영, 소)
  • 1945년 7월 26일: 포츠담 선언 (미, 영, 중, 소)
  • 1945년 8월 8일: 소련 참전 및 북한 간접 통치 시작
  • 1945년 8월 15일: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 설립
  • 1945년 9월 6일: 조선 인민 공화국 선포
  • 1945년 9월 8일: 미군정 실시
  • 1945년 9월 11일: 조선 공산당 창당 (박헌영)
  • 1945년 9월 16일: 한국민주당 창당 (송진우, 김성수)
  • 1945년 10월 13일: 조선 공산당 북조선 분국 지정
  • 1945년 10월 16일: 이승만 귀국 (독립촉성중앙협의회)
  • 1945년 10월 28일: 북조선 5도 행정국 구성
  • 1945년 11월 12일: 조선 인민당 창당 (여운형)
  • 1945년 11월 23일: 김구 개인자격 귀국
  • 1945년 12월 16일: 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 (미, 영, 소)
  • 1946년 2월 8일: 북조선 임시 인민 위원회 설립
  • 1946년 2월 16일: 남조선신민당 창당 (백남운)
  • 1946년 2월: 북조선신민당 창당 (김두봉, 연안파)
  • 1946년 2월 21일: 신한공사에 귀속농지 귀속
  • 1946년 3월 3일: 신한공사 설립
  • 1946년 3월 5일: 북한 토지개혁
  • 1946년 3월 20일: ★1차 미∙소 공동 위원회 개최★
  • 1946년 4월: 북조선 공산당 (김일성, 갑산파)
  • 1946년 5월 4일: 조선 정판사 위폐사건 (조선공산당)
  • 1946년 5월 6일: ★1차 미∙소 공동 위원회 결렬★
  • 1946년 6월 3일: ★이승만의 정읍 발언★
  • 1946년 7월 25일: ★좌우 합작 위원회 (김규식, 여운형)★
  • 1946년 8월 29일: 북로당 합병
  • 1946년 9월: 9월 총파업 (조선공산당)
  • 1946년 10월 4일: ★좌우 합작 7원칙 발표★
  • 1946년 10월: 대구 민중항쟁 (조선공산당)
  • 1946년 11월: 남로당 합병
  • 1946년 12월: 남조선과도입법의원 (초대 의장: 김규식)
  • 1947년 2월 8일: 북조선 인민 위원회 설립
  • 1947년 3월 12일: 트루먼 독트린 발표 (냉전 시작)
  • 1947년 5월 21일: 2차 미∙소 공동 위원회 개최
  • 1947년 7월 19일: 여운형 피살
  • 1947년 8월: 2차 미∙소 공동 위원회 결렬
  • 1947년 9월: 한반도 문제 UN 상정
  • 1947년 10월 6일: 좌우 합작 위원회 해체
  • 1947년 11월: UN 총회
  • 1948년 2월 8일: 북한 인민군 창설
  • 1948년 2월 10일: 김구 “3천만 동포에게 읍고함”
  • 1948년 2월 26일: UN 임시 총회 (소총회) 구성
  • 1948년 3월 11일: 1차 농지개혁 (귀속농지에 한함)
  • 1948년 3월 22일: 신한공사 해산
  • 1948년 4월 3일: 제주 4∙3 사건
  • 1948년 4월 19일: 김구∙김규식 남북협상 추진
  • 1948년 5월 10일: 남한 단독 총선거 실시
  • 1948년 7월 17일: 헌법 공포
  • 1948년 7월 20일: 제1대 대통령 선거 (이승만 당선)
  •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 1948년 9월 9일: 북한 정권 수립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 1948년 9월 22일: 반민족 행위자 처벌법 제정
  • 1948년 10월: 반민특위 구성
  • 1948년 10월 19일: 여수∙순천 사건
  • 1948년 12월 1일: 국가 보안법 제정
  • 1948년 12월: UN 대한민국 공식 승인
  • 1949년 6월 21일: 농지 개혁법 제정
  • 1949년 6월 26일: 김구 피살
  • 1949년 6월 29일: 미군 철수
  • 1949년 6월 30일: 조선 노동당 설립
  • 1949년 8월: 반민특위 해체
  • 1949년 12월 19일: 귀속재산처리법 제정 (공장, 주택 불하, 토지 제외)
  • 1950년 1월 10일: 애치슨 선언
  • 1950년 3월: 농지 개혁법 시행 시작
  • 1950년 6월 25일: 한국 전쟁 발발
  • 1950년 6월 27일: UN 안전 보장 이사회 결의, UN군 참전 결정
  • 1950년 7월: 낙동강 전선까지 밀림
  • 1950년 9월 15일: 인천 상륙 작전
  • 1950년 9월 28일: 서울 수복
  • 1950년 10월 1일: 국군이 38도선 통과, 북진 시작
  • 1950년 10월 19일: 평양 탈환
  • 1950년 10월: 압록강변 도달
  • 1950년 10월 25일: 중국군 개입
  • 1950년 11월 27일: 중국군 본격 참전
  • 1950년 12월 15일: 흥남 철수

1951년~1960년

  • 1951년 1월 4일: 1.4 후퇴 (서울 재함락)
  • 1951년 1월: 국민방위군 사건
  • 1951년 2월: 거창 양민 학살 사건
  • 1951년 6월: 소련의 휴전 제안
  • 1951년 7월: 휴전 회담 시작
  • 1951년 12월 23일: 자유당 조직
  • 1952년 7월 7일: 1차 개헌 (발췌개헌, 직선제)
  • 1952년 8월 5일: 제2대 대통령 선거 (이승만 당선)
  • 1953년 1월: 아이젠하워 당선
  • 1953년 3월 5일: 스탈린 사망
  • 1953년 6월: 이승만 반공포로 석방
  • 1953년 7월 27일: 휴전 협정 체결 (미국, 중국, 북한)
  • 1953년 10월: 한미 상호 방위 조약 체결
  • 1954년 4월 26일: 제네바 회담 결렬
  • 1954년 11월 29일: 2차 개헌 (사사오입 개헌, 3선 개헌)
  • 1956년 5월 15일: 제3대 대통령 선거
    • 대통령: 이승만 (이승만 vs 신익희 vs 조봉암)
    • 부통령: 장면
  • 1956년 8월: 8월 종파 사건 (연안파, 소련파 제거)
  • 1957년: 천리마 운동
  • 1958년: 3대 혁명운동
  • 1958년 1월 12일: 진보당 사건 (조봉암 처형)
  • 1958년 12월 24일: 신국가보안법 제정
  • 1959년 4월 30일: 경향신문 폐간
  • 1960년 3월 15일: 제4대 대통령 선거
    • 대통령: 이승만 (이승만 vs 조병옥)
    • 부통령: 이기붕
  • 1960년 4월 11일: 김주열 시신 발견
  • 1960년 4월 18일: 고려대 학생 시위
  • 1960년 4월 19일: 서울대 학생∙시민 대규모 시위 → 경찰 발포로 희생자 속출
  • 1960년 4월 19일: 계엄 선포
  • 1960년 4월 23일: 장면 사임 후 이승만 하야 요구
  • 1960년 4월 25일: 대학교수 시위
  • 1960년 4월 26일: 이승만 하야
  • 1960년 4월 27일: 허정 과도정부 수립
  • 1960년 6월 15일: 제3차 개헌
  • 1960년 8월 12일: 민주당 정부 수립
    • 총리: 장면
    • 대통령: 윤보선
  • 1960년 11월: 윤보선 신민당 창당
  • 1960년 11월 29일: 제4차 개헌

1961년~1970년

  • 1961년 5월 16일: 5.16 군사 정변, 군사혁명위원회 → 국가 재건 최고 회의
  • 1961년 7월: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발표
  • 1961년 10월 20일: 한일 제6차 회담
  • 1962년 1월: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공표
  • 1962년 6월 10일: 화폐 개혁 (환 → 원)
  • 1962년 11월 12일: 김종필-오히라 각서
  • 1962년 12월: 4대 군사노선 (주체사상)
  • 1962년 12월 26일: 제5차 개헌
  • 1963년 2월: 민주 공화당 창당
  • 1963년 10월 15일: 제5대 대통령 선거 (박정희 vs 윤보선)
  • 1964년 6월 3일: 6.3 시위 “굴욕 외교 반대”
  • 1964년 9월 22일: 베트남 파병 시작 (1973년 3월 23일 종료)
  • 1965년 2월 20일: 한일기본조약 (한일협정)
  • 1966년 3월 7일: 브라운 각서
  • 1966년 7월 9일: 한미행정협정 (SOFA)
  • 1967년: 북한 갑산파 내 강경파 집권
  • 1967년 5월 3일: 제6대 대통령 선거 (박정희 vs 윤보선)
  • 1968년 1월 21일: 1.21사태 (김신조 청와대 습격)
  • 1968년 1월 23일: 푸에블로호 사건
  • 1968년 10월 30일: 울진∙삼척 무장 공비 침투 사건
  • 1968년 12월 5일: 국민교육헌장
  • 1969년 7월 25일: 닉슨독트린 발표 (냉전 완화)
  • 1969년 10월 21일: 제6차 개헌 (3선 개헌)
  • 1970년: 경부 고속 국도 개통
  • 1970년: 새마을 운동 시작
  • 1970년 11월 13일: 전태일 분신 사건

1971년~1980년

  • 1971년 4월 27일: 제7대 대통령 선거 (박정희 vs 김대중)
  • 1971년 8월 12일: 남∙북 적십자회담
  • 1972년 7월 4일: 7.4남북공동성명
  • 1972년 8월 3일: 8.3조치 (기업 대출 상환 동결)
  • 1972년 10월: 제7차 개헌 (유신헌법)
  • 1972년 12월 23일: 제8대 대통령 선거 (박정희: 간선)
  • 1972년 12월: 사회주의 헌법 (주석제)
  • 1973년 2월: 3대혁명 소조 운동
  • 1973년 6월 23일: 6.23 평화통일 외교 선언 (UN 동시 가입 제안)
  • 1973년 7월 3일: 포항 제철 준공
  • 1973년 8월 8일: 김대중 납치 사건
  • 1973년 10월 6일: 제1차 석유 파동 (1974년 종료)
  • 1973년 12월 24일: 100만인 서명운동
  • 1974년 4월: 민청학련사건
  • 1974년 11월 27일: 민주회복 국민회의
  • 1975년: 학도호국단∙민방위대 창설
  • 1976년 3월 1일: 3.1 민주 구국 선언
  • 1977년: 수출 100억 달러 달성
  • 1978년 7월 6일: 제9대 대통령 선거 (박정희)
  • 1978년 12월: 제2차 석유 파동 (1979년 종료)
  • 1979년 8월 9일: YH 사건 → 신민당 당사 점거 농성, 김영삼 대표 국회에서 제명
  • 1979년 10월 16일: 부∙마 민주 항쟁
  • 1979년 10월 26일: 10.26 사태
  • 1979년 12월 6일: 제10대 대통령 선거 (최규하)
  • 1979년 12월 12일: 12.12 사태 (전두환)
  • 1980년 5월 15일: 서울의 봄 (화려한 휴가)
  • 1980년 5월 18일: 광주 5.18 민주화 운동
  • 1980년 5월 31일: 국가 보위 비상 대책 위원회 설치
  • 1980년 7월 30일: 7.30 교육 조치
  • 1980년 8월 27일: 제11대 대통령 선거 (전두환)
  • 1980년 10월 27일: 제8차 개헌
  • 1980년 12월: 언론 기본법 제정

1981년~1990년

  • 1981년 1월: 민주 정의당 창당
  • 1981년 2월 25일: 제12대 대통령 선거 (전두환)
  • 1982년 1월 22일: 민족∙화합∙민주 통일 방안 발표
  • 1982년 3월 18일: 부산미국문화원방화사건
  • 1983년 10월 9일: 미얀마 아웅산 폭탄 테러 사건
  • 1984년 5월 18일: 민주화추진협의회 설립
  • 1984년 9월: 합영법 제정
  • 1985년 9월: 제1차 남북이산가족 상봉
  • 1986년 2월 12일: 직선개헌 1천만 명 서명운동 시작
  • 1986년 7월: 부천 경찰서 성고문 사건
  • 1987년 1월 14일: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 1987년 4월 13일: 호헌 조치 발표
  • 1987년 6월 9일: 이한열 사망
  • 1987년 6월 10일: 6월 민주 항쟁 (국민 대회 개최)
  • 1987년 6월 29일: 6.29 민주화 선언
  • 1987년 7월: 노동자 대투쟁 (6월 민주 항쟁 영향)
  • 1987년 10월 29일: 제9차 개헌
  • 1987년 11월 29일: KAL기 폭파 사건 (김현희)
  • 1987년 12월 16일: 제13대 대통령 선거 (노태우)
  • 1988년 4월 26일: 제13대 총선 (여소야대)
  • 1988년 7월 7일: 7.7 특별 선언
  • 1988년 9월 17일: 88 서울 올림픽 개최
  • 1989년 9월 11일: 한민족 공동체 통일방안 발표
  • 1989년 11월 10일: 베를린 장벽 붕괴
  • 1990년 5월 9일: 3당 통합 (민주 정의당 + 통일 민주당 + 신민주 공화당)
  • 1990년 9월 4일: 최초 남북 총리 회담 개최
  • 1990년 9월 30일: 소련과 수교

1991년~2000년

  • 1991년 9월 17일: 남북 UN 동시 가입
  • 1991년 12월 9일: ILO 가입
  • 1991년 12월 13일: 남북 기본 합의서 체결
  • 1991년 12월 31일: 한반도 비핵화 공동 선언
  • 1991년 12월: 나진∙선봉 경제 특구 설립
  • 1992년 2월 19일: 한반도 비핵화 공동 선언
  • 1992년 8월 24일: 중국과 수교
  • 1992년 10월 5일: 합작법 제정
  • 1992년 12월 18일: 제14대 대통령 선거 (김영삼 당선)
  • 1992년 12월 22일: 베트남과 수교
  • 1993년 3월 12일: 제1차 북핵 위기
  • 1993년 8월 12일: 금융 실명제 실시
  • 1994년: UR 협정 체결, 수능 실시
  • 1994년: WTO 출범 가입
  • 1994년: 신합영법 제정
  • 1994년 7월 8일: 김일성 사망
  • 1994년 9월 23일: 제네바 협정
  • 1995년: 지방 자치제 전면 실시
  • 1995년 3월: KEDO 설치 (한반도 에너지 계발 기구)
  • 1995년 11월 11일: 민주노총 설립
  • 1996년: 역사 바로 세우기 운동 시작
  • 1996년: OECD 가입
  • 1997년: IMF 외환위기
  • 1997년 12월 18일: 제15대 대통령 선거 (김대중 당선)
  • 1998년 1월 15일: 노사정 위원회 설립
  • 1998년: 금 모으기 운동, 노사정 위원회 활동
  • 1998년 6월: 정주영 소떼 방북
  • 1998년 9월 5일: 김일성 헌법 제정
  • 1998년 11월: 금강산 해로 관광 시작
  • 1999년 6월 15일: 제1차 연평해전
  • 2000년 3월 9일: 베를린 선언
  • 2000년 6월 15일: 6.15 남북 공동 선언
  • 2000년 8월 15일: 제2차 이산가족 상봉
  • 2000년 9월 17일: 경의선 복구 기공식

2001년~2007년

  • 2002년: 개성공단 착수
  • 2002년 6월 29일: 제2차 연평해전
  • 2002년 12월 19일: 제16대 대통령 선거 (노무현 당선)
  • 2003년: 금강산 육로 관광 시작
  • 2003년 6월: 개성공단 착공식
  • 2007년 10월 4일: 10.4 선언
    • 남북 공동 어로 구역
    • 서해 평화 수역 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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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사 연도별 정리 글입니다. 한국사는 수천 년에 걸쳐 다양한 사건과 변화를 겪으며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형성해왔습니다. 아래에서는 각 시대별로 주요 역사 사건을 연도별로 서술하여 한국사의 흐름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정리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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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사 연도별 정리 자료는 모닝스터디의 자료를 제공받아서 제공함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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