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저 건국 시기는 늦어도 BC 3세기입니다. 생각보다 매우 빨리 건국된 나라이죠. 하지만 연맹 왕국까지 발전하지 못하고 군장 국가에서 멸망했는데요. 그렇다면 옥저는 왜 ‘고조선도 이루었던 연맹 왕국’을 만들지 못했을까요? 이번 글에서는 그 이유부터 다른 세부 시험 논점까지 모두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옥저 건국
옥저의 건국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적어도 BC 3세기 이전에는 건국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위치는 함경도 동해안인데, 고구려의 개마대산 동쪽이지요. 토지가 비옥하고 바다도 끼고 있어 어물과 소금이 풍부했는데, 고구려와 인접한 탓에 고구려의 침략을 받아 거의 다 빼앗겼죠.
고구려의 잦은 침략은 옥저가 연맹왕국으로 성장하는데 악영향을 끼칩니다. 권력을 갖은 자가 주변을 통합하여 힘을 모으려 하면 고구려는 침입해서 훼방을 놓았기 때문입니다. 연맹왕국과 군장국가를 구분하지 못하시는 분들은 아래 링크를 클릭하셔서 읽어보시기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이후 AD 285년 멸망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고구려의 6대 왕인 태조왕이 옥저를 복속 시킨 이후(AD 1세기), 국가가 있다고 보기 어려울 만큼 힘을 쓰지 못하는 국가였습니다.
옥저의 특징
옥저의 위치가 보이시나요? 현재 북한이 무단 점령하고 있는 지역입니다. 따라서, 옥저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기가 매우 어려우며, 실제로도 매우 적은 내용이 알려져 있습니다. 수험생 분들에게는 희소식인 것이죠. 그러나, 알려져 있는 내용들이 특이하기 때문에 암기하지 않으면 시험 문제 맞출 수가 없어요. 심지어 이런 문제 틀리면 못 붙어요.
옥저의 특이한 특징 첫 번째, 민며느리제입니다. 여자가 어렸을 때 남자 집으로 넘어가서 일을 하는데, 여자가 성장하여 어른이 되면, 남자의 집에서 여자의 집에 예물을 치르고 혼인을 하는 풍습입니다. 엄연히 여자의 노동이 있기 때문에 경제적 가치가 높은 예물을 치렀다고 합니다. 따라서 학자들은 민며느리제를 매매혼으로 보고 있습니다. 고구려의 서옥제는 매매혼이 아닌데, 둘을 비교하는 것이 출제 포인트입니다.
옥저의 특이한 특징 두 번째, 가족공동무덤입니다. 시체를 가매장 후 뼈를 추려 가족 공동 무덤인 목곽에 안치합니다. 목곽의 입구에는 쌀 항아리를 매달아 놓는 것이 특징입니다.
옥저의 마지막 특징은 제천행사가 없다는 것입니다. 부여는 영고, 고구려는 동맹, 삼한은 수릿날, 계절제, 심지어 동예도 무천이라는 제천 행사를 거행했는데, 초기 여러 나라 중 옥저만 유일하게 제천행사를 하지 않았습니다. 문헌에 기록된 것이 없고, 북한에 위치하다 보니 더 이상 연구하기도 어려워서 밝혀지지 않은 것으로 판단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