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예 총정리

동예 건국 시기는 BC 82년입니다. 그런데, 건국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고구려가 주변에 건국 되었고, 고구려에게 수없이 침략을 받아왔죠. 이런 이유 때문에 동예는 연맹왕국에 이르지 못하고 군장군가로 멸망하게 됩니다. 동예는 강원도 북부 동해안에 건국되었기 때문에 북한 위치에서 건국한 옥저보다 자료가 많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동예 시험 출제 포인트 확실히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동예 특징

동예가 군장 국가로 멸망했기 때문에 왕이 없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옥저와 동예의 특징을 물을 때 빠지지 않고 나오는 내용이지요. 이 내용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옥저와 동예가 ‘왕이 없음’만 암기하시면 시험 문제를 틀리실 수 있습니다. 옥저와 동예를 구별하는 시험 문제도 출제되기 때문이죠. 따라서 동예의 세부 특징을 암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옥저 총정리

 

동예 특산물

동예의 특산물은 단궁, 과하마, 반어피입니다. 단궁의 경우 고구려의 맥궁과 헷갈릴 수 있고, 과하마의 경우 부여의 말과 헷갈릴 수 있으므로, 반어피를 확실히 암기하시는 편이 좋습니다. (두문자 암기 방법: 단과반)

동예 반어피
반어피

반어는 바다표범을 가르키며, 피는 가죽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반어피는 바다표범의 가죽을 의미하는 것이죠. 필자는 우리나라에 바다표범이 없다고 생각해서, 동예의 특산물이 반어피라는 것을 의심했었습니다. 그런데, 울릉도에서 바다표범이 이따금씩 발견되고 있다는 기사를 보고 신뢰하고 있습니다. 

또한 동예는 방직 기술이 발달해서 명주와 삼베를 잘 만들었다고 합니다. 필자는 명주와 삼베의 발달은 아마도 ‘죽음에 대한 깊은 철학에서 시작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동예 사람들은 병을 앓거나 사람이 죽으면 옛 집을 버리고 새 집을 지어서 살아갔습니다. 그만큼 삶과 죽음에 대한 명확한 구분을 짓고, 죽음을 두려워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의식은 고인들에게 옷을 제작하여 입혀드리는 것으로까지 연장되었을 것이며. 이로 인해 명주와 삼베 기술이 발달한 것이 아닐까 해석해봅니다.

 

폐쇄적 씨족 사회

동예가 연맹왕국으로 발전하지 못한 큰 이유는 고구려의 잦은 침략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고구려가 침략을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연맹왕국까지 발전하지 못했을 수 있습니다. 바로 폐쇄적 씨족 사회였기 때문이죠. 즉, 다른 부족과 교류가 매우 적었습니다. 다른 부족 영역 침범시 노비, 소, 말로 변상하는 책화 제도인 책화가 그 증거입니다. 

연맹왕국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여러 부족이 서로 부딪히고, 분쟁이 있더라고, 분쟁 이후 화합하여 합의점을 찾아야 발전을 할 수 있는데, 동예는 부딪히는 일 자체를 만들려 하지 않았습니다. 

 

동예 제천 행사

제천행상의 경우 단순 암기입니다. 행사에 대한 자료가 매우 부족하기 때문이죠. 그냥 각 나라에서 실시된 제천 행상의 이름과 시기를 암기하셔야 합니다. 동예의 제천 행사 이름은 무천이며 10월에 실시되었습니다. 부여: 영고(12월), 고구려: 동무(10월), 삼한: 수릿날(5월), 계절제(10월)이므로, 단순 암기하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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