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건국 시기는 BC 3세기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고조선이 연나라의 공격을 받은 이후 대동강 유역으로 쫓겨나자, 송화강에 자리를 잡고 건국한 것이죠. 부여에 대한 정보가 많이 남아있지는 않지만, 고구려와 백제의 뿌리가 되는 나라이므로, 꼭 알아야 하는 국가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부여의 특징을 알아보고, 출제 포인트를 짚어보겠습니다.
부여 건국
부여 건국 시기는 BC 3세기입니다. 하지만 BC 3세기부터 AD 1세기까지 기록이 거의 없습니다. 우리나라 초창기 역사의 경우 중국의 기록을 참고할 수밖에 없는데, 중국은 BC 3세기에서 AD 1세기까지 부여보다는 고조선에 집중을 했기 때문입니다.
부여는 AD 1세기에 왕의 명칭을 사용하였는데요. 따라서 적어도 연맹왕국까지는 발전한 것이죠. 연맹왕국의 경우, 강력한 힘을 가진 군장이 왕이 될 수 있었기 때문에, 왕은 교체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왕의 세력이 약해졌을 때, 흉년이 들거나, 재해가 발생하면 왕은 교체가 되었습니다. 부여의 경우 마가, 우가, 저가, 구가의 군장 중 가장 힘이 쎈 군장이 왕이 된 것으로 추측됩니다. (군장국가, 연맹왕국, 고대국가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들은 아래 링크를 참고하세요.)
AD 3세기에 이르러서는 일시적 왕위 부자 상속도 이뤄졌습니다. 만약 이시기에 국가 체제가 잡히고, 불교를 수용했더라면, 고대 국가로도 발전할 수 있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물론, 부여도 4조목이 있어서 법률로 볼 수 있는 조문이 있긴 했지만, 이는 국민들의 생활 관련 법률일 뿐, 국가 체제에 관련된 법률이 아니었기 때문에 율령이 반포되었다고 볼 수 없습니다.
- 살인죄: 당사자 사형, 가족은 노비
- 절도죄: 12배 배상(1책 12법)
- 간음죄: 사형
- 투기죄: 사형
또한 종교도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금으로 따지고 보면 미신과 같은 방법으로 나라의 길흉을 점쳤습니다. 바로 소를 죽이고 소의 굽으로 길흉을 점치는 것이였죠. ‘소의 굽이 어떻게 갈라지냐’에 따라 길과 흉이 나뉘어졌는데요. 해석하는 해석자의 마음대로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였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선비족의 침략(AD 3세기 말)으로 쇠퇴하고 고구려의 정복(문자왕, AD 494년)으로 고대 국가로 이어지지 않고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부여 역사 기록
AD 3세기에 이르러서는 중국의 삼국 중 위나라와 교역도 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위나라의 역사서인 ‘위지동이전’에서 부여에 관한 여러가지 설명을 했는데요. 초기 건국된 다른 나라와 구별되는 내용이 수록되어있어, 시험에 자주 출제되므로 꼭 숙지하시기 바랍니다.
- ‘부여는 오곡을 가꾸기에 적당하고 과일은 생산되지 않았다.’
- ‘사람들 체격이 크고, 강직, 용맹, 근엄, 후덕하다.’
초기의 여러나라 중 고구려를 제외하고 모두 오곡을 가꾸기에 적당했으므로, 구분되는 내용이 아니지만, 과일이 생산되지 않았다는 내용은 부여가 유일합니다. 꼭 숙지하시기 바랍니다.
사람들 체격이 크고, 강직, 용맹하다는 표현을 보면, 위나라는 부여 사람들에게 대해 긍정적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데요. 바로 국경이 인접해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위나라와 국경이 인접해있었던 고구려의 사람들에 대한 평가는 매우 부정적이었기 때문이죠.
부여의 경제
부여는 반농반목입니다. 경제 활동의 반은 농경이었고, 반은 목축이었다는 뜻이죠. 이렇기 때문에 특산물은 말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동예의 특산품인 과하마와는 다릅니다. 구별해서 암기하세요.)
이밖에도 주옥과 모피도 특산품이므로 암기가 필요합니다. 동예의 특산품을 ‘단과반’이라는 두문자를 통해 암기하셨다면, 부여의 특산품은 ‘주말모’로 암기하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아? 주말모하세요?
부여의 유목 생활은 문화에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형이 죽게되면 아우가 형수님을 모시면서 사는 문화였죠. 이는 생활지를 옮겨다니는 유목민이기 때문에 나타날 수 있는 문화입니다. 형이 죽었을 때, 형수님이 형의 재산을 갖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게 되면, 가족의 재산을 빼았기는 꼴이 되기때문에, 형수님을 모시고 사는 것입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모시고 사는 것보다는 재산을 지키는 것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부여 제천 행사
부여의 제천 행사 이름은 ‘영고’이고 12월에 시행되었습니다. 초기 여러 나라의 제천 행사는 모두 10월에 열리기 때문에, 부여만의 독특한 특징이므로 꼭 암기하셔야 합니다. 고구려 동맹(10월), 동예 무천(10월), 삼한 수릿날(5월), 계절제(10월) 입니다.
부여의 제천 행사가 12월인 이유는 수렵 사회의 전통으로 보고 있습니다.
단순 암기
지금까지 부여의 내용을 대부분 설명해드렸습니다. 하지만 시험은 위의 내용만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흐름 속에서 해결되지 않는 세부적인 내용을 단순 암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래의 내용은 흐름 속에서 이해하지 마시고, 시험 문제를 위해 암기하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 흰 옷 숭상
- 은력 사용
- 순장
- 여름에는 장례는 얼음을 넣음
- 국왕의 장례에 옥갑 사용
- 장사(장례)를 후하게 지냄
- 곽은 사용하나 관은 사용하지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