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익숙한 공간이 낯설게 느껴질 때 해리 증상 의심되시나요? 자신을 자각하고 있는 상태인데도 사물이나 공간, 기능을 인식하지 못하는 혼란스러운 경험을 반복한다면, 정신건강의학과 상담이 필요할 수 있죠. 이번 글에서는 ‘미시감(낯섦)’과 해리, 그리고 이와 유사한 인지적 혼란 증상들에 대해 사례를 중심으로 자세히 설명드리겠습니다.
현실이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
익숙한 공간에서 갑자기 방향 감각을 잃거나,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 도구의 사용법을 잊게 되는 경우는 매우 당황스러울 수 있습니다. 특히 기억이 통째로 사라지지는 않지만, 순간적으로 현실감이 끊기는 듯한 느낌은 많은 사람들이 겪는 혼란 중 하나입니다.
공간이 낯설게 느껴지는 경험
오랫동안 다니던 길이나 집 안방조차 처음 온 장소처럼 느껴지는 경험은 단순한 집중력 저하로 보기 어렵습니다. 마치 낯선 곳에 홀로 떨어진 것처럼 느껴지고, 그곳이 어디인지조차 판단이 서지 않을 정도라면 이인증(derealization)의 일종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인증은 해리 증상 중 하나로, 현실을 뚜렷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현실과의 거리감이 발생하고, 그로 인해 불안과 공포가 따라붙는 것이 특징입니다.
사물의 기능을 순간적으로 잊는 현상
스마트폰을 어떻게 터치하는지 잊거나, 문고리를 돌리는 방식을 잊는 상황은 매우 드물지만 반복되면 병리적 해석이 필요합니다. 단순히 기능을 몰라서가 아니라, ‘그 순간에 그 기능이 존재한다는 인식 자체가 사라지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일종의 실행장애나 해리성 기억 장애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가령 문고리를 보며 ‘저건 문을 여는 물건이다’는 기본적인 인식이 전제되지 않기에, 아무 행동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해리, 꼭 트라우마가 있어야 할까?
많은 분들이 ‘해리’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에서만 나타나는 증상이라고 생각하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꼭 과거의 큰 트라우마가 있어야만 해리 증상이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감정 억제와 해리의 관계
지속적인 감정 억제나 자기표현의 어려움, 성장기에서의 애착 불안 등도 해리 증상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뇌는 감당하기 어려운 감정이나 정보를 무의식적으로 차단하는데, 이 과정에서 현실 감각의 일부가 함께 단절되는 현상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는 매우 개인적인 내면의 방어 기제로 작동하며, 스스로 인지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반복적 스트레스도 원인
큰 사건이 아니더라도, 일상적인 스트레스가 반복되면서 뇌는 현실을 일시적으로 차단하는 ‘해리 반응’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이 경우 특정 장소나 사물에 특별한 감정이나 기억이 연결되지 않더라도, 인지적 혼란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저 너무 오랜 시간 감정을 억누르고, 피로가 누적되어 온 몸이 ‘일시적 셧다운’을 선택한 것일 수 있죠.
병적 해리와 일반적인 혼란의 차이
그렇다면 어떤 경우 병적 해리로 볼 수 있을까요? 아래와 같은 특징이 있다면 전문가의 진단을 받아보는 것이 좋습니다.
기억은 남지만 접근이 불가한 경우
해리성 증상은 일반적인 기억상실과 다릅니다. 기억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단지 ‘접근이 차단된 상태’에 가까운 경우가 많습니다. 시간이 지나거나 외부 자극이 주어지면 다시 인식되기 시작하기 때문에, 마치 퍼즐이 맞춰지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반복성과 일상 기능 저하
단순한 피로나 순간적인 집중력 저하는 대부분 금방 회복됩니다. 하지만 비슷한 증상이 수개월 이상 반복되고, 일상생활의 기능을 방해할 정도로 지속된다면 더이상 단순한 혼란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특히 사용하는 물건이나 익숙한 공간에서조차 방향감각을 잃거나 공포를 느끼는 경우, 정신의학적 상담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진단보다 중요한 경과관찰
정신건강의학과에서는 한 번의 진단으로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해리와 같은 증상은 시간에 따른 경과 관찰과 증상의 맥락 파악이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일시적 스트레스 반응인지, 해리성 장애인지, 아니면 신경인지기능 저하의 일부인지 구분하려면 반복적인 진료와 관찰이 필요합니다.
자기 상태를 기록해보세요
의사와의 상담 외에도, 증상이 나타난 시간, 상황, 장소, 당시 감정 등을 구체적으로 기록해두면 큰 도움이 됩니다. 어떤 자극이 트리거가 되었는지, 특정한 패턴이 있는지 파악하는 데에 중요한 단서가 되기 때문입니다.
마무리하며
현실이 낯설게 느껴지고, 익숙한 사물을 순간적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험은 그 자체로 무척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일입니다. 이러한 증상이 지속되거나 반복된다면, 주저하지 말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보시기 바랍니다. 스스로를 이상하게 여기기보다, 내 뇌와 마음이 잠시 과부하 상태일 수도 있다는 관점으로 접근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해리는 ‘이상한 병’이 아닙니다. 마음이 너무 힘들어 잠시 현실에서 벗어났다가 돌아오는 방식일 수도 있고, 아직 알려지지 않은 인지 기전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건 그 증상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받아들이는 것에서부터 회복이 시작된다는 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