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 건국과 발전

고조선 건국은 BC 2333년에 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고려 시대(1281년) 일연 스님에 의해 편찬된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이 내용을 신뢰할 수 있을까요? 필자는 이 내용을 신뢰하지 않지만, 우리나라 국사편찬위원회는 이 내용을 사실이라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고조선이 BC 2333년에 건국 되었음을 전제로 공부해야 합니다.

 

고조선 건국 

고조선과 관련된 여러가지 내용은 중국 역사서 관자, 산해경, 사기, 한서 등에 수록되어 있지만, 건국에 관련된 내용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따라서 고려시대에 편찬된 우리나라 역사서를 참고할 수밖에 없습니다.

관자: 고조선에 대해 최초 기록, 제나라와 고조선의 교역 기록, 고조선 문피 유명한 것으로 기록

산해경: 위치

사기: 조선의 왕은 연나라 사람인 것을 기록

한서: 고조선 8조법 중 3개 조항(사람을 죽인 자는 즉시 죽인다. 남에게 상처를 입힌 자는 곡식으로 갚는다. 도둑질을 한 자는 노비로 삼되, 용서받고자 하는 자는 50만전을 내야 한다.)

 

그러나 유교적 합리주의 사관에 기초하여 제작되었다는 삼국사기에는 고조선 건국 기록을 찾아볼 수 없으며, 판타지적 요소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삼국유사에서 고조선 건국 기록이 나와있습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고조선은 BC 2333년에 건국되었다고 합니다. 삼국유사를 편찬한 일연스님은 위서라는 책을 참고하여 이러한 내용을 수록하였다고 하는데, 일연 스님 본인이 주석을 달 때에도 건국 연도에 대한 의심을 품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일연스님이 참고했다는 위서라는 책은 현 시점에 어떤 책인 지조차 알 지 못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유물을 통해 고조선이 BC 2333년에 건국되었다는 것을 입증해야합니다. 만약 이를 입증하지 못하면, 일반적인 역사 흐름을 통해 발전해온 것이 아니라, 중국에게 기술을 전파 받아 갑작스럽게 생겨난 국가가 되기 때문이죠. 

다행히도 고조선이 청동기 시대(BC 2000년 즈음)에 건국되었음을 증명할 수 있는 유물들이 있습니다. 바로, 비파형 동검, 탁자식 고인돌, 거친무늬거울, 미송시식 토기가 그 유물들 입니다. (만약 BC 2000년이 왜 청동기인 지 모르시거나, 위 유물들이 왜 청동기를 대표하는 유물들인 지 모르시는 분들은 아래 링크 글을 먼저 읽고 오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청동기 시대 

 

고조선 세력 범위 및 유물

고조선 정확한 기록

고조선에 대한 역사 기록은 철기 시대부터 남아있습니다. 사마천이 편찬한 사기에 의하면 BC 4세기 경 요서를 경계로 연(춘추 전국 시대의 나라 중 하나)과 대립하였다고 나와있습니다. 위의 그림은 보면 알 수 있듯이 고조선의 세력 범위는 연나라보다 컸고, 요하강을 경계로 대립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BC 3C 초 연의 침입으로 고조선은 서쪽 2000리를 상실하고, 대동강(평양) 지역으로 쫓겨나게 됩니다. 이때의 세력 범위는 세형 동검과 잔무늬거울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 철기 시대를 참고하세요.

철기 시대 

 

후기 고조선

진나라로 통일이 되자, 연나라 출신이었던 위만이 고조선으로 망명을 하게 됩니다. 필자는 사실상 위만을 중국 사람으로 보고 있지만, 우리나라 역사편찬위원회는 다른 시점으로 평가합니다. “위만은 원래 고조선 사람이었던 사람이었고 잠시 연나라로 넘어간 교포이다.”라고 주장하고 있죠. 그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입국 시 상투를 틀고 오랑캐 옷을 입었다고 하는데, 기록을 남긴 중국인의 시점에서는 오랑캐 옷이 조선인의 옷
  2. 조선 그대로 국호 사용
  3. 토착민 출신 고위 관료 대다수

위만이 정확히 어느 시기에 망명했는 지 알 수 없으나, 고조선의 부왕이 그의 아들 준왕에게 왕위를 넘겨 준 후 왕위를 뺏았았습니다. 왕위를 빼았긴 준왕은 남쪽 진국으로 내려가 한왕이 되었죠. 

 

 

위만 조선

왕을 빼았은 위만은 철기 문화을 본격적으로 수용했습니다. 여기서 주의하실 점은 처음 수용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위만이 왕을 뺏기 전 부터 이미 철기는 사용되어 왔었습니다. 단지 본격적으로 수용하여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철기를 본격적으로 수용한 위만 조선은 남쪽으로는 진번과 임둔을 정복하고, 북쪽으로는 압록강 근처까지 세력을 넓혀갔습니다. 과거 고조선이 쫓겨난 요동 지역에는 부여가 생겨났기 때문에 더 올라갈 수 없었습니다.  

후기 고조선 부여, 진 출몰

 

북쪽으로는 부여가 막고 있고, 남쪽에는 진나라가 있었기 때문에, 고조선은 땅을 더 넓히기보다는 무역을 통해 경제적 이점을 취하려고 했습니다. 한나라(중국)와 진나라(고조선 남쪽)의 중계 무역으로 수수료를 챙겨먹었죠. 이에 화가 난 한나라는 BC 108년 고조선의 왼쪽(요동 지역)에 창해군을 설치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조선이 중간 수수료를 계속 챙겨먹으니, 경고하기 위해 BC 109년 사신 섭하를 파견합니다. 이 때 섭하는 고조선의 왕 ‘장’을 살해하고, 고조선의 왕인 우거왕은 섭하를 처단합니다. (이 시기의 왕을 물으면서 위만과 우거왕의 내용을 섞어서 출제하므로 우거왕인 것을 꼭 기억하세요.)

이에 화가 난 한나라의 왕 무제는 고조선을 침략합니다. 고조선은 1차 침입은 잘 막아내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지배층의 내분이 생겨났고, 니계상 참이 우거왕을 피살하고, 고조선의 상인 역계경이 진으로 망명하면서, BC 108년 고조선은 멸망합니다. 

이후 한나라는 고조선이 잇던 자리에 4군(낙랑, 진번 임둔, 현도)를 설치하고, 법조항 이 60개 조로 증가하였습니다. 

 

고조선은 고대국가인가?

고조선을 고대국가로 볼 수 있을까요? 고대국가로 인정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국가 체제가 잡혀있어야 합니다. 보통 왕위 부자세습이 되고, 율령이 반포 되고, 종교가 있으면 고대국가로 인정을 해줍니다. 

고조선의 경우 단군 조선 시기에도 왕위 부자 세습(부왕 → 준왕)이 있었고, 위반 조선 시기에도 왕위 부자 세습(위만 → ? → 우거왕)이 있었습니다. 강력한 왕권으로 볼 수 있는 것이죠. 

하지만 8조법만으로는 율령이 반포되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심지어 8개가 모두 전해지는 것도 아니고 그 중 일부가 전해지는데 그 내용이 일상 생활에 관련된 조문에 불과합니다. 국가 체제가 잡혔다고 볼수는 없습니다. 또한 종교도 수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고대 국가로 볼 수 없습니다. 

이후 등장하는 부여, 고구려, 옥저, 동예, 삼한 중 일부 국가는 고대 국가가 되는 나라도 있고, 고대 국가가 되기 전 멸망하는 나라도 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위에 언급한 나라들의 성장 단계와 특징들을 설명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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